▲ 황규엽

원주 세인교회 담임목사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신지 이제 열흘. 마음에 허전함을 지울 길이 없다. 12남매의 막내로 자라난 터라 다른 형제들이 겪는 것과는 다르게 훨씬 더 한 그리움이 남아 있는 것일까? 자주는 아니었어도 간혹 찾아뵐 때면 막내애기(?)가 왔다고 그렇게 반가워하실 수 없었는데…. 오십이 다된 아들이건만 여전히 귀여웠는지 용돈을 손에 쥐어주곤 하셨던 어머니. 이젠 그분께 세배드릴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서글프기 짝이 없다. 절이라도 자주 해 드릴 것을…

어머니는 19살에 시집오셔서 그 시절 여인들이 그러했듯이 고생을 많이 하신 듯하다. 어린나이에 이미 남편의 전처소생인 4남매를 떠맡아야 했으니 말이다. 엄격했을 뿐 아니라 앞선 며느리에 대한 편애를 가졌던 시어머니의 싸늘함 속에 시작된 시집살이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소신이 있으셨는지 당신이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찬밥을 물에 말아 먹이는 설움이 있음에도 남의 자식 4남매는 언제나 따뜻한 밥을 지어 먹여야만 마음이 편하셨단다. 그 후로 어머니는 8남매를 더 두셨다. 그 어려운 시절, 경제능력이 없었던 남편과 함께 살면서 모아둔 재산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 많은 자식 대학교육을 다 시키셨다. 그리고 보란 듯이 키워내셨다. 정말 대단한 분이시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어머니의 희생을 무엇으로 다 설명하랴.

고생을 많이 하신 탓일까 어머니의 말년은 질병으로 만신창이셨다. 중풍으로 말미암은 언어장애와 만성신부전증으로 많이 괴로우셨다. 급기야 돌아가시기 석달 전부터 거동이 불가능한 채 몸은 많이 야위고 팔다리는 몹시 부으셨다. 발가락 끝의 피부는 이미 거무스레 죽어가고 있었다. 혈액순환은 안되고 살이 없는 등짝에는 욕창이 나타났다. 온몸으로 느끼는 통증에 힘겨워하시는 어머니. 안타까움에 눈물만 쏟아졌다. 우리 엄마가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되셨는가? 오랜 세월이 흘러 연세가 드셨기 때문인가? 아니다. 나는 비로소 알게 됐다. 어머니의 지금 이 고통은 그동안 진이 빠지도록 12남매를 뒷바라지 하느라 얻게 된 영광의 상처란 것을. 그렇다면 하늘 아래 이보다 더 한 숭고함이 또 있을까? 자식들의 성공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주고 당신의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신음하는 어머니,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그 병든 모습을 진정 사랑하게 되었다. 오십이 다 돼서야 눈뜨게 된 어머니의 존재감이랄까?

어머니가 떠나신 후에 큰 아쉬움이 하나 남아 있다.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실 때 “엄마, 고마워요. 저희 12남매를 잘 키워주셔서. 무엇보다 막내아들이 훌륭한 목사가 되었잖아요.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누구보다 엄마의 수고를 제가 알아요. 우리 천국에서 만나요”라는 인사말을 못한 것 때문이다. 대신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그 숭고한 희생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6:1,2)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