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열

삼척주재 취재부국장
일본에서 눈(雪) 고장으로 유명한 나가노현에 ‘도소진 히마츠리’라고 불리는 불 축제가 있다. 매년 1월15일, 한겨울에 눈밭위에서 열리는 축제를 한번이라도 목도한 사람은 정말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다. 너도밤나무 등을 활용해 15∼20m 높이의 거대한 탑을 쌓아 올린 뒤 불을 붙이려는 쪽과 이것을 막는 쪽이 거칠게 맞붙는 축제의 열기가 정말 손에 땀을 쥐는 장관을 연출한다. 불을 막는 쪽은 만 25세와 42세가 된 성인 남자들이다. 그해에 ‘삼재(三災)가 들었다’고 그들이 믿고 있는 나이다. 이들은 불을 막는 행위를 통해 액(厄)을 소멸시키고, 무사안녕을 기약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떼지어 불 붙은 쏘시개를 들고 나무 탑을 향해 돌진하면, 액년(厄年)의 남자들이 온몸으로 맞서 저항한다. 함성과 불꽃이 사방으로 튀는 전쟁터같은 충돌이 한겨울 밤, 눈밭위에서 하염없이 반복되고 결국 거대한 불탑에 불이 붙어 사방을 밝히는 것으로 축제는 절정에 달한다.

공방전이 얼마나 격렬한지, 축제를 마친 뒤 온 몸이 숯 검댕이가 된 액년의 남자들은 엉엉 울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눈물은 고통보다는 희열이다. 축제의 중심에서 훌륭히 역할을 하고, 액을 소멸시켰다는데 대한 안도감까지 더해졌기에 눈물은 더욱 진하다. 그런 참여 열기와 전통 전승 의지가 결합되면서 도소진 히마츠리는 지금 일본내 3대 불축제의 하나로 이름을 올리고,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렇게 주민 전체가 주연 배우가 될 수 있는 겨울 축제가 우리에게도 있다. 삼척이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정월대보름제는 겨울 전통민속축제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그 중심에는 삼척이 자랑하는 최대 볼거리인 ‘기줄다리기(도 무형문화재 제2호)’가 있다. 기줄다리기는 1662년 삼척부사로 재임했던 미수 허목 선생이 오십천 제방을 쌓으면서 농민들의 협동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놀이로 전해지고 있는데, 마치 ‘게’의 발처럼 뻗어나간 줄의 모양새도 특이하거니와 한쪽에 수백명씩 붙어 줄을 당기는 역동적 광경이 마치 잘 만들어 진 한편의 현장 다큐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생동감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축제 현장에서 협동의 역동성은 불(火)과 결합될 때 더욱 강한 에너지로 승화된다. 그래서 옛날 삼척사람들은 기줄다리기를 거의 밤을 새워가며 횃불을 밝히고 연출했다. 그러나 지금은 휘영청 달빛 아래서 대동의 함성과 횃불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그런 흥미진진한 민속놀이를 구경할 수 없다. 정월대보름제 축제 현장에서도 기줄다리기를 대낮에 시연하기 때문에 원형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한번 제안을 해본다. 예전처럼 밤 새워 놀이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일몰 후 초저녁에 횃불을 밝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시연에 나서는 방안을 강구해보자고. 그러려면 주민들이 배우로 기꺼이 나서야 한다. 삼척의 젖줄인 오십천을 경계로 서북쪽을 말곡(末谷), 동남쪽을 부내(府內)로 나눠 수많은 주민들이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면서 줄에 매달리던 그 옛날의 참여 열기가 담보돼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주민들이 배우가 되고, 새끼와 칡줄기 등을 활용해 기줄의 원형을 살려나간다면 그것은 상품이 되고, 추억이 되고, 감동이 된다. 도소진 히마츠리처럼 주민들이 혼신을 다한 뒤 관광객들과 함께 최상의 희열을 맛보는 축제의 현장을 기줄다리기의 고장 삼척에서도 보고싶다. dychoi@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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