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오늘날 세계동시 불황의 시대에 인기가 높은 말, 뭔가 희망을 주는 말을 하나 꼽아 보라면 뉴딜이라는 말을 들겠다. 뉴딜은 신자유주의 구시대를 극복하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말이 된 듯하다. 30년 신자유주의 역사에 반전을 도모하겠다는 오바마 정부도 자신의 민주적 개혁의 길을 신뉴딜이라고 이름지었는데, 그와 정반대로 역사의 물길을 거역하고, 녹슨 삽질을 휘두르며 신자유주의 역주행 길로 돌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마저 뉴딜 운운한다. 과연 무엇이 뉴딜의 핵심인지, 오늘날 새로운 뉴딜은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뉴딜이라는 말은 1930년대 대공황기 루즈벨트가 1932년 7월 2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하는 연설에서 사용한 말에서 유래했는데, 뉴딜정책은 회복(Recovery), 구제(Relief), 개혁(Reform)의 세 가지를 포함한다. 그래서 흔히 3R 정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회복, 구제, 개혁의 세가지 R이 다양한 방식으로 혼합 될 수 있다는 것이다. 30년대 원판 루즈벨트의 뉴딜 자체가 그러했고 전후의 뉴딜도 줄곧 그러했다. 오늘날 오바마의 신뉴딜에서도 우리는 그런 혼합형을 본다. 뉴딜이 그렇게 혼합형으로 되는 이유는 물론 긴급한 과제의 우선 순위가 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완강한 구체제, 기득권층을 얼마나 제압하느냐, 어떤 선에서 타협하느냐 즉 ‘딜(deal)’을 하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성공적으로 진보적인 신성장 체제를 재건해낼 수 있는가 하는 정치적 능력이다.

루즈벨트의 뉴딜은 기득권 체제에 유화적인 전기 뉴딜에서 1935년을 전환점으로 하여 구체제의 골격을 상당히 깨트리는 후기 뉴딜로 전환했다. 재벌, 금융, 노사관계, 복지 등 오늘날 시대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개혁의 진보적 내용은 후기 뉴딜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2차 대전은 후기 뉴딜의 기조를 크게 퇴색시켰다. 뉴딜의 연구사에서는 구체제에 손을 대지 않으면서 정부가 공공사업 등에 돈을 퍼부어 경기부양책 일변도로 나가는 회복 중심의 정책을 ‘상업적 케인즈주의’라고 하고, 개혁과 구제를 중심으로 구체제를 발본적으로 개혁하는 선상에서 경기회복을 꾀하는 정책을 ‘사회적 케인즈주의’라고 하는데, 전쟁을 거치면서 45년 이후 미국의 뉴딜은 사회적 케인즈주의가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면서도 트루먼에서 존슨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케인즈주의 요소가 지속된다.

다른 한편 보수적 레이거노믹스는 뉴딜에서 개혁과 구제의 핵심부분은 시장으로 대체하고 그 회복 부분은 받아들인다. 그래서 흔히 레이거노믹스를 군사적 케인즈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순수 시장주의가 아니라 무책임한 기득권층에 대한 정부의 퍼주기 지원과 이를 통한 경기 회복을 내포하고 있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시장 대 정부라는 이분법을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다.

오바마의 신뉴딜이 월가의 덫에 빠진 것 같다. 크루거먼, 스티글리츠는 오바마의 경제회복책을 “쓰레기에 돈을 퍼붓는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AIG나 시티은행에 대한 무분별한 공적 자금지원, 부실자산 정리계획 등을 보면 그런 비판은 당연하다. G20 정상회의에서도 유럽은 금융 시스템 개혁 우선을 주장하는 데 반면, 미국은 재정지출 확대를 내세워 지도력을 잃고 있다.

처음부터 안이하게 ‘월가의 아이들’을 끌어들인 탓이다. 오바마노믹스는 ‘상업적 성격’을 약화시키고, ‘사회적 성격’을 강화해야 활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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