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정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장자연 리스트”사건이 ‘사실상 마무리’된다고 한다. 잠시 우리는 WBC에 열광하느라 그리고 돔구장을 짓고 야구를 살려야 한다는 걱정에 사건을 잊고 있었다. 연이어 국민요정 김연아 선수가 세계피겨선수권 대회에서 일등을 했다. 뉴스와 광고 속의 그 예쁜 모습에 맘을 빼앗겨 우리는 또 잠시 이 우울한 사건을 잊고 지냈다. 그러고 있자니 경찰은 강요죄로 5명을 사법처리하는 것으로 수사를 ‘일시 중지’하겠다고 한다. 젊고 아름다운 여배우의 사진을 보면서 연예계의 착취관계와 권력, 섹스, 죽음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오래 하는 것은 참으로 못할 짓이다. 그런 만큼 사건은 재빨리, 제대로, 처리되었어야, 했다. 이렇게 시간을 한참 끌고서 나온 흐리멍텅한 결론을 마주하자니 매우 슬프다. 죽음을 부르는 잔인한 먹이사슬 앞에서 눈을 내리까는 비겁한 우리사회의 자화상을 인정하기 힘들어 슬프다.

이 사건에 대한 이러 저러한 보도나 분석과 관련하여, 우리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 점을 분명히 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첫째, 이런 식의 성적 착취관계는 어쩔 수 없는 일이거나 필요악이 아니다. 흔히 연예계의 ‘생리’라거나 또는 남자연예인도 당한다거나 하면서 이런 일이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물론 우리가 타인을 해하는 개개인의 욕망을 일일이 제어하고 다스릴 완벽한 법과 제도를 갖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날 연예기획사의 계약내용이나 매니지먼트 방식이 체계적이고 구조적으로 인권 침해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 아니라 법적 개입이 필요한 ‘문제 상황’인 것이다.

둘째, 이 사건에서 섹스는 권력관계에서 힘의 우열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사법처리가 결정된 기획사 인물이나 피디 등이 여배우와 맺고 있던 힘의 관계는 구체적이며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세간을 떠도는 리스트상의 이름들은 재벌급의 초법적 거대 권력이 진짜 문제라는 점을 고발한다. 섹스를 통해 권력을 드러내는 방식은 하위수준의 권력관계에서도 쉽게 모방되며 사회 전체에 만연하게 된다. 여기서 권력자의 쾌락은 피해자의 복종을 요구한다. 누군가의 쾌락을 위해서 또 다른 누군가는 자기 뜻과 달리 자기 몸이 침해되고 희롱당하는 것을 견뎌야 한다. 성적 쾌락의 제공이 피해자에게 무언가를 보장해주는 듯이 보일지 모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백이면 아흔 아홉은 권력자가 원하는 쾌락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해코지를 당할 두려움 때문에 피해자는 요구에 응하게 된다. 그것이 권력관계의 ‘생리’인 것이다. 이 때문에 사건의 정황을 동물의 세계에 나오는 ‘먹이사슬’로 비유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럽게 들린다. 그러니 권력관계에서 힘을 가진 사람이 힘이 없는 사람에게 드러내는 쾌락의 욕구와 성적 욕망은, 그 자체가 바로 폭력이고 범죄인 것이다.

그런데, 셋째, 권력관계에서의 섹스는 남녀에게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여성의 섹스만이 뇌물처럼 권력자들에게 바쳐진다. 왜 그럴까?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다행히도?!) 섹스비디오 스캔들의 피해자가 남성인 경우도, 연예계의 ‘생리’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증 판정을 받고 자살한 남성 연예인도 없었다. 여성 정치인과 여성 CEO가 늘어나고 여성 우주인이 나왔어도, 여전히 질기게 살아있는 구시대의 ‘잔존물’은 바로, 여성은 결국 성적 대상일 뿐이라는 사고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과 여론에 등장하는 ‘성상납’이나 ‘성접대’라는 용어는 특정 성을 피해자로 만드는 폭력성을 가린다. 경찰이 붙인 ‘강요죄’라는 죄명 역시 특정 성이 피해자가 되는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다. 이 사건이 성매매특별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 가중처벌이 필요한 특정범죄로라도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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