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재상

관동대 교수(시인)
딱한 일이다. 90년대 초부터 10년이나 걸린 힘들고 지루한 과정 끝에 강릉 시민들이 마침내 떨쳐내는데 성공했다고 믿었던 도암댐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강원도와 한수원(주)의 공동의뢰를 받아 한국경영정책평가연구원이 지난 2005년 7월에 발표한 ‘도암댐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 용역’의 최종 결과는 도암댐의 수질을 2급수 이상으로 개선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시켰고, 바로 그 용역결과에 근거하여 국무조정실과 강원도, 한수원은 도암댐을 폐쇄하기로 결정했었다. 사태가 일단락됐던 것이다. 그 직후에 한수원은 강릉수력발전소의 구조를 개편하고 발전설비의 해체작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런 까닭에 4년 전에 “수천억 원의 혈세를 들여 발전소를 만들었으면 폐쇄하는 것보다는 오염원을 차단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등의 보완 조치를 취한 후 활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대안”이라고 주장하면서 강릉수력발전소 인근의 일부 주민들이 도암댐의 폐쇄를 반대하는 내용의 건의서를 국무총리실에 제출할 때만 해도 기존의 경제적 이익을 상실하게 된 일부 주민들의 보기 민망한 소집단이기주의, 안쓰러운 해프닝 정도로만 보였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셈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 배후에 있는 한수원이다. 도암댐 방류를 재개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점점 더 노골화하고 있는 한수원이 한편으로는,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본디 도암댐은 강릉 남대천의 안정적인 수량 확보를 위해 건설됐던 모양이구나” 라고 잘못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을만큼 교묘한 내용들이 담긴 전략적인 방송광고와 신문광고들을 지역에 집중적으로 쏟아놓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사모’ 같은 단체를 앞세워 자신들의 주장을 확대재생산하게 함으로써 지역의 여론을 뒤흔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한수원은 강릉 남대천의 건천화를 염려해서 깨끗한 물을 공짜로 제공해주겠다는데 강릉 사람들이 싫다고 앙탈을 부린다는 식이다.

거슬러 올라가, 도암댐의 본래 용도부터 되짚어 보자. 20년 전에 당시의 한국전력이 정부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분명하게 밝혀져있듯이, 본디 도암댐은 영동지역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주기 위한 일종의 위기관리 시설로 건설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지역의 전력소비가 증가하여 예비전력이 부족해질 때에만 발전하겠노라고 신청하여 허가받은 시설이다. 그런데 훗날 강릉경실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도암댐이 강릉남대천으로 발전방류수를 쏟아낸 10여년 동안에 영동지역의 예비전력률이 5% 이하로 떨어졌던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에 한수원은 매월 평균 25일에 걸쳐 발전시설을 가동하였다. 한 마디로 규정을 어긴 것이다.

바로 며칠 전인 4월 29일에 강릉에선 ‘남대천 살리기 범시민 비대위’가 결성되었고, ‘공적 자금을 사용하여 선량한 시민들 사이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한수원의 행태’를 비판하는 성명서가 채택되었다. 남대천을 되찾으려는 강릉 시민들의 긴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게 분명하다.

올 초에 남대천 하구에선 앞으로 연차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진행될 남대천 자연형 하천 만들기 사업의 첫삽을 뜨는 행사가 열렸다. 홍제동과 내곡동 사이에 새로 놓인 징검다리 부근에선 2∼3년 전부터 여름철이면 꼬마들이 바글대며 신나게 소리를 질러대며 물장난을 하고 멱을 감는다.

“발전 방류 중단 이후 우리가 얻은 것이 대체 무엇인가”라는 ‘남사모’의 억지 질문, 그 답답한 주장에 나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그동안 우리가 얻은 것, 지금도 되찾아가는 중에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남대천이고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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