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 조

만해마을 주지스님
맑고 고요한 삶을 살고 싶다. 언제든 모자람도, 넘치지도 않는 그만큼의 삶을 살아가기를 서원한다.

우리는 흐르는 세월 동안 거울 속으로 보이지 않는 많은 움직임을 본다. 말하고 싶은 것 어느 하나 머릿속, 입 속, 손 끝, 심지어 눈 안에서조차 볼 수 없지만, 가슴 속의 이야기는 그렇게 살아난다.

오랜만에 비가 촉촉이 적셔온다는 핑계로 펜을 들어본다. 우주(cosmos)를 적시며 저 먼 데서 부터 끊임없이 달려오는 빗방울들을 손안 가득 담아서 조용히 귀 기울이노라면 어느새 가슴이 고요해진다. 안드로메다며, 달나라며, 가까운 유럽의 중심자로서의 소식이 가슴속에서부터 들려온다. 나는 짧은 기간 이국땅을 밟은 적이 있다. 가난과 먼지로 가득 찬 나라였지만 그들은 매일 아침 맑은 물(정화수)과 향을 준비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가정의 평화와 자신들의 서원으로 하루를 열었다.

해가 질 때면 다시 정성스럽게 두 손을 모아 하루를 참회하며 침묵으로 마무리 했다. 평범한 찰나의 시간들이 이들의 기도를 통해 기적처럼 맑게 때를 벗고 있었다.

이는 1970~1980년대, 우리의 어머님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 아름답고, 순수한 풍경들이 어느새 미신으로 몰리며 사라져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필자는 출가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만, 인간에게 진정한 기쁨과 평화를 전해준다면 기독교와 천주교, 불교, 또한 어느 종교라도 지지한다. 오직 우리의 본성이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신 그분들 앞에서 맑고, 고요해지기만을 바란다.

흑과 백, 종교의 다름과 같은 이념의 논리는 더 이상 세계를 지배하지 못한다. 나와 다르고, 나와 같다고 해서 친소가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조화롭게 상생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다시 우리나라에도 소박하고, 맑은 물 한 그릇에 서원을 세우는 미풍양속이 다시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누구를 믿느냐가 아닌, 나의 믿음은 얼마나 순수한 것인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정화수 한 그릇에 손 모을 줄 아는 사람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러한 가정은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지혜 속에 자신은 물론 가정의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맑은 믿음을 키워내는 부모를 볼 때, 자녀들도 함께 손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깨끗하고 비어있는 마음이라야 한다. 마음이 청정하면 온 국토가 청정해지며, 국토가 청정해지면 국민이 청정해진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가을바람이 부는 것과 같고, 추운 겨울에 따뜻한 봄바람이 부는 것 같다. 이런 마음이 깨끗한 마음이다.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나와 그대들에게 무진장 넘치도록 있는 마음인 것이다.

봄과 여름의 교차로에 서있는 지금, 우리도 그토록 맑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생각의 차이를 넘어서 서로 만날 수 있기를 나는 기원한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