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지난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이외의 나라에 ‘스승의 날’을 별도로 제정하여 스승의 은혜에 감사함을 표현하는 나라가 또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한국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유례 없이 교육자를 존경하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그러한 한국사회에서 선생님으로서, 스승으로서 존경 받기보다는 노동자로서, 조합원으로서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지켜나가겠다고 결성한 단체가 전교조이다. 국민들은 우리 교육의 미래와 연관하여 이 단체를 의아스러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 사실 20년 전 전교조의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가 ‘촌지 안 받기 운동’이라는 참신하고 정의감 있는 청렴 운동을 주도했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한 단체가 전교조로 되고 불법투쟁을 계속하다가 합법화된 이후 교육행정시스템 도입 반대투쟁, 초등학교 진단평가 거부투쟁, 교원평가 저지투쟁 등의 집단이익을 지키기 위한 편협한 이익단체 활동을 전개하고 교육과는 무관한 노무현대통령 탄핵반대 투쟁의 선봉에 서거나 한미FTA 반대투쟁 등 극단적인 정치투쟁을 주업으로 하는 운동권 단체로 탈바꿈 하였다.

하지만 학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전교조가 무슨 투쟁을 하건 관심 없다. 우리 자식 교육만 잘 시켜준다면. 훌륭한 기업의 CEO로 만들어 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로 만들어 내고, 유명 대학에도 쑥쑥 잘 들여보내고, 세계적인 대학에 유학도 보내고 하면 반대할 일이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교조는 평준화 교육에 목을 매고 있다. 비슷한 도토리 만들어내자는 교육이다. 평준화 이후 학교도 전부 비슷해졌고, 학생도 판에 찍은 듯 그만그만하게 되었다. 개성이 없다. 야구 잘 하는 학교도 있고, 바둑 잘 하는 학교도 있고, 수학도 짱 잘 가르치는 학교도 있고, 영어도 기차게 잘 가르치는 학교도 있어야지 모두 천편일률적이 되어버렸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세계화의 무한경쟁 시대에 맞는 인재를 양성할 것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경쟁은 나쁜 것이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가르치면 문제는 심각해지기 시작한다. 성적을 비교할 것이니 전국단위 시험은 치지 말고, 그딴 시험공부에 목매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면, 내 아이들이 혼자 낙오자가 되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

아이들에게 평등과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가르치고 좌익화시켜 한총련으로 졸업시키고, 종국에 가서는 민노총의 전사로 키우겠다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든다. 교육문제를 이익투쟁의 대상으로 접근한 편협성에 더하여, 교육과 관련 없는 사회·정치·경제적 문제들에 적극 개입하는 지긋지긋한 정치성,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부정하되 북한은 막무가내 옹호하는 친북 이데올로기의 정체성은 더 문제다. 나아가 순수한 교원단체가 아니라 권력기관이 되었을 때 전교조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게 된다. 지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임명하기 전에 전교조에 동의를 구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임명된 교육부 장관이나 실·국장들이 전교조의 눈치를 보아 가며 정책의 수위를 조절해 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전교조의 권력기관화는 교육문제는 자신들의 허락을 받아야만 정책으로 집행 될 수 있다는 거만함으로 또 사회의 경제·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한 탈법적인 투쟁으로 나타났다.

최근 정부는 학교교육 정상화를 학원 때려잡기에서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본말이 전도되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이유는 학교교육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이다. 따라서 학교교육 정상화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전교조도 정치 투쟁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한 순수한 교사들의 모임으로 돌아가야 한다. 스승의 날에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기대하며 전교조가 국민들에게 미더운 조직으로 되돌아 올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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