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오종

한라대 교수
당신께서 고향 땅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하여 서거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지난 토요일, 우리는 모두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사랑하는 아내에게조차 한마디 말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던 전임 대통령의 불행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짓게 하였습니다. 다른 한편, 지금껏 진실로 행복했던 대통령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우리 국민의 처지가 새삼 서러워 탄식하였습니다. 하야와 암살, 본인과 자식들의 철창행도 모자라 이제 그 불행의 리스트에 자살까지 올리게 되었으니 국민의 마음이 무너지고도 남았습니다.

당신을 떠나보내며 고백합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당신을 존경했습니다. 어려운 환경, 고졸 학력에도 절치부심 노력하여 그 어려운 사법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인간 승리에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변호사 시절에 노동운동을 지원하다 당당히 투옥되던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망국적인 병폐인 지역주의 청산을 위해 낙선할 줄 잘 알면서도 출마하여 거듭 고배를 들이키던 바보여서 감동적이었습니다.

당신께서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지지한 사람들만의 대통령이 아닌 반대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고 갈등과 분열의 시대는 끝이 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집과 독선으로 통합보다는 분열을 조장하는 대통령으로 비치곤 하였습니다. 탄핵의 역풍을 맞기도 했고 당신을 대통령으로 밀어주었던 정당과 많은 우군과도 결별하였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대통령이 되고 나서 너무 갑자기 똑똑해진 것 같아 미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께서 청와대를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재임 중에 받지 못하였던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회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여느 퇴임 대통령과는 달리 청와대와 여의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봉하마을로 내려갔기에 그만큼 더 기대가 되었습니다. 밀짚모자를 쓰고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모습이며 몰려온 방문객들과 어울려 촌부 웃음을 씩 웃으며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며 당신께서 다시 바보가 되려나보다 싶어 흐뭇하였습니다.

그러다 당신의 오랜 후원자들과 형님 등이 구속되고 당신과 가족들에 대한 보도가 연이어졌습니다. 마침내 당신께서는 국민에게 면목없다고 하면서 ‘‘사람 사는 세상’홈페이지를 닫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께서는 피의자 권리를 주장하며 검찰 앞에서 물증을 대라고 요구하여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원래 바보이며, 바보로 대통령이 된 분이어서 기대가 더 컸던 탓이겠습니다. 그러다 비보에 접하였습니다. 당신께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을 때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당신의 편이 되어주지 못해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수많은 사람이 당신을 멀리 떠나보내며 서러운 눈물을 쏟는 국장일 아침, 옷깃을 여미며 당신의 짧은 유서를 다시 읽어 봅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글이 유난스레 눈에 들어옵니다. 대통령까지 지낸 분이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감하면서 얼마나 한이 많았겠습니까. 토론의 달인인 당신께서 청문회 스타로서 보여주었던 격정으로 그 한을 토로했다면 엄청난 글을 쓰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당신께서는 다시 바보가 되어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당신께서는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인 국민통합을 외치고 싶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갈등과 대립 속에서 미움의 쓰나미가 넘쳐나는 우리 정치 현실에 마지막으로 경종을 울리고 싶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증오의 시대를 청산하고 화합의 새 시대를 여는 것은 온전히 우리 살아남은 자들 모두의 몫입니다.

사랑하고 미워했던 바보 대통령님, 이제 무거운 짐 우리에게 맡기고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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