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5월 23일 노무현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이 고향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 아래로 뛰어 내려 투신 자살을 하였다. 수백만명의 국민들이 그의 비극적 죽음을 애도하였다. 그는 일주일 만에 국민들이 띄운 노란 풍선을 뒤로 하고 한 줌의 재로 변해 자연으로 돌아 갔다. 안녕, 바보 노무현, 그가 지상의 가시밭 길에서 짊어졌던 고된 짐을 다 내려 놓고 영원한 고향, 정토에서 편히 쉬기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민주화 시대 전직 대통령의 투신 자살이라니. 이 경천동지할, 뜻밖의 사건은 우리 역사에서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며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전직 대통령만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도 그렇게 한다. 이 전대미문의 비극적인 사건 앞에 현직 대통령이란 사람이 직접 조문을 하지 않음은 물론, 그 흔한 대국민 담화조차 발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또 한번 놀란다. 이럴 수가 있는가. 과연 오늘 우리 대한민국에 정치가 있는가.

청와대 안에서 참모들한테 이런 저런 몇 마디 말로 끝날 일이 결코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하여 대다수 국민들은 이 사건이 이명박 정부의 정치 보복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무엇보다 검찰, 경찰 수뇌부 그리고 보수 언론이 ‘노무현 죽이기’의 3대 공범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현직 대통령에 중대한 책임이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나라꼴을 하고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하고, 진상 조사를 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하겠다고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해야 마땅하다. 하긴, 이 정부의 전직 대통령 예우 방식이 실로 독특해서, 조용히 낙향하여 주경야독하는 전직 대통령을 치욕스럽게 할퀴고 물어 뜯어 사지로 몰아 넣었으니, 담화문 따위를 발표할 생각조차 나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단지 담화문이 아니다. 국민장을 치르는 동안의 화해는 짧은 평화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그 짧은 평화 속에서도 전쟁은 계속되었다. 누구였던가, 정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전쟁의 연속이라고 한 사람은. 이는 오늘의 대한민국에 꼭 들어 맞는 말이다.

경복궁 뜰안의 영결식은 큰 탈없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국민장 공동위원장을 맡은 한승수와 한명숙, 전·현직 두사람의 한 총리가 차례로 조사를 낭독했는데, 한 사람의 소리는 영 무미건조하고 다른 한 사람의 소리는 그야말로 심금을 울렸지만, 그 때만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무엇보다 다행히 노제가 치러지는 동안 만큼은 서울 광장도 개방되어 온통 노란 물결로 뒤덮였다.

그러나 거기까지 였다. 경복궁 안에서 현직 대통령은 헌화할 때 ‘살인자’, ‘정치보복이다’, ‘사죄하라’ 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경찰은 국민장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민들의 분향소를 철거했다. 서울 광장은 다시 봉쇄됐고, 항의하던 시민들은 끌려 가야 했다. 정부는 영결식 전날 있었던 시민 추모제 때도 서울 광장을 열어 주지 않았었다. 뿐만 아니라 유족들이 원했고 한명숙 장의위원장이 요청하여 의도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마저도 이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 와중에 대법원은 삼성재벌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국민장 동안 있었던, 짧은 막간의 평화를 보내고 전쟁은 이어지고 있다. 바보 노무현이 희구했던 사람사는 세상은 언제 올까. 과연 무엇이 잘 사는 길인가. 강부자만 살판나고, 녹슨 삽질만 휘두르는 불통, 먹통의 나라를 넘어서 우리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생명평화, 민생 민주 공화국은 언제 오려나.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일시적 분노를 넘어서야 한다. 지리멸렬하고 파편화 된 민주 진보의 대오를 새롭게 재정비해야 한다. 소아병적 급진주의를 넘어 폭넓은 연대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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