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래

OK시골 대표(월간마을 발행인)
현대인들은 참 바삐 산다. 제시간에 닿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서도 좀 더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바삐 돌아쳐야 하루에 만날 사람들과 약속을 지킬 수 있다. 술을 마셔도 빨리 취하는 폭탄주가 제격이다. 그러면서 늘 불안하다. 열심히는 살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다. 이런 모습에 대해 어떤 문화심리학자는 ‘사는 재미를 잃어버린 한국 중년 남자들의 중병’이란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중년남성들만 걸려 있는 큰 병은 아니다. 그 바쁜 틈바귀에서 살고 있는 누구나의 병이다. 바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현대사회의 단면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다보니 남들과 같이 덩달아 뛰어야 한다. 그 무리에 끼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다. 그렇게 바쁘고 빠름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많다. 그런 힘이 있었기에 자동차와 핸드폰, 인터넷 강국이 되었다. 이런 것들로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똑같이 삶의 질을 높여 주지는 못했다.

현대를 살면서 주변에서 심심찮게 ‘과속 스캔들’을 접하게 되고 과속으로 인한 치명적인 사고들을 목격한다.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이제 사람들은 천천히 사는 방법을 배우고 느림의 가치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곧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임을 깨닫고 있다. 웰빙과 ‘다운시프트’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다운시프트(downshift)란 자동차의 기어를 고단에서 저단으로 바꾸어 속도를 줄이는 것을 뜻한다. 삶에서의 다운시프트는 인생의 기어를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걷기에 대한 열광이 바로 이런 다운시프트 삶에 대한 가치 찾기다.

제주도에 가면 ‘올래’길이 있다. 올래는 큰 길과 집의 입구를 이어주는 골목길을 말한다. 마을과 마을을 잇고 집과 집을 이어주는 작은 길이다. 요즘 제주도는 올래길을 따라 걷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하루를 걷고, 이틀을 걷고 그래도 남는 길은 다음에 또 와서 걷는다. 이렇게 ‘게으른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제주행 비행기는 연일 무거워지고 있다.

제주도는 이런 관광객들을 맞아들이기 위해 올래길 정비에 나섰다. 이미 있는 길이었기에 새롭게 개발할 필요가 없고 투자비도 많이 들지 않는다. 그저 길을 덮고 있는 풀을 베어내고 돌을 치우고 이정표만 몇 개 달아주면 된다. 길을 따라 걷는 여행객들은 어디로 바삐 가야 하는 것이 아니기에 굳이 바쁠 필요도 없다. 길이 불편해 속도가 가지 않으면 돌아가면 된다. 그러면서 주변 풍경도 마음껏 감상하고 길섶에 핀 들꽃도 관찰한다. 지치면 길가 마을에 들러 민박을 하고 식사를 한다. 자연스럽게 농촌관광마을이 생겨난다.

농촌관광에 대한 생각이 많다. 정책에서도 지역들도 그것을 두고 많은 고민을 한다. 그런데 모두 바쁘다. 뭔가 보여주려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일 계산으로 빠른 승부를 내려한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큰 집을 짓는다. 산속에 자동차길을 만들려 혈안이 되고 심지어 모노레일을 놓겠다고도 한다. 그런 고민을 해야만 하는 농촌현실의 절박함에 대한 이해는 간다.

하지만 도시가 바쁘고, 화려하다고 덩달아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차를 타고 바쁘게 달리던 사람들이 천천히 걷기 위해 제주도 올래길을 찾는 것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속도감으로 어지럼증을 느끼며 사는 현대인들은 브레이크를 찾고 있다. 식물원들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도, 탬플스테이가 인기를 끄는 것도 그런 이유다.

올래길과 같은 농촌관광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그것이 농촌관광의 최고 컨셉이며 올바른 방향이다. 강원도식 올래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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