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병재

원주 중앙성결교회 담임목사
며칠 전에 은행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중형트럭이 차를 막아놓고 있었다. 이렇게 주차했을 때에는 잠시 볼일이 있는 상황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에 좀 기다려 보았지만 트럭운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연락처라도 있는가 하여 운전석 등을 찾아보았으나 연락처도 없었다. 다행히 그 트럭에 회사전화번호가 있어서 회사로 전화를 걸었더니 어떤 아가씨가 받았다. “지금 귀 회사의 차가 제 차를 막고 있어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운전자의 연락처도 없구요” 하면서 차량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다짜고짜로 그것도 퉁명스럽게, “거기 어디에요, 위치가 어디냐고요, 기다리세요” 하더니 전화를 딱 끊었다. 조금 있다가 트럭운전자가 왔지만 그 운전자 또한 전혀 미안한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날, ‘미안하다’라는 말 한마디 없이 차에 시동을 걸고 나가는 그 운전자의 모습을 보면서, 친절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전화 받은 아가씨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의 여유와 친절이 메말라가고 있는 우리네 삶의 각박한 현실을 느끼며 씁쓸함과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팠다. “미안합니다” 한 마디만 했더라도 나는 내가 겪은 불편에 비중을 두기보다 오히려 그 아가씨의, 그 트럭운전자의 친절에 더 비중을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일하고 있는 그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 차에 새겨져 있었던 회사이름이 기억난다. 단순한 사건이지만, 그 사건은 그 회사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어쩌면 큰 사건이 된 것이다. 트럭운전자와 전화 받은 아가씨는 개인이지만 저들의 태도에 따라 고객들은 회사를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미·고·사·축’이라는 말이 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라는 말의 첫 글자모음이다. 이런 말들을 ‘천국방언’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런 말이 많은 공동체는 천국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고사축’의 말이 많은 가정, 직장, 사회, 나라는 사람들이 행복함을 느끼게 되고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나아가게 된다.

나는 요즘 우리 교회에서 ‘축복하며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자’는 운동을 벌인다. 그것은 축복의 언어화, 축복의 생활화, 축복의 사역 화를 이루는 것이다. 축복의 말을 하고, 축복하는 삶을 살고, 축복하면서 일하자는 것이다. 그리할 때,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한국의 청정지역인 우리 강원도를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환경 좋고 인심 좋은 강원도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산소요, 한국의 비타민으로 모두에게 신선한 행복을 선물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 이때에, 어디를 가도 희망보다는 절망을 말하고 있는 이때에, 긴장을 풀어주는 위로의 말 한마디, 치유를 가져오는 용서의 말 한마디, 소망을 심어주는 격려의 말 한마디, 생명을 불러오는 사랑의 말 한마디를 우리 입술에 담고, 우리 삶에 실천한다면 어둠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밝은 횃불처럼, 한 겨울에도 그 빛을 잃지 않는 푸른 소나무처럼, 갈증에 목말라 허덕이는 이 시대에 참으로 맑은 샘물의 표주박 같은 삶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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