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재상

관동대 미디어문학과 교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는 단숨에 반도 전체를 회한과 슬픔, 안타까움과 분노가 뒤엉킨 거대한 소용돌이로 바꾸어놓았다. 그 쓰라린 시간은 그러나,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새 정부의 통치방식에 대한 좌절 어린 분노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정치적 슬로건의 허구성에 대한 자각이, 주류 보수 언론에 의해 극단적으로 왜곡되어온 그의 진정한 면모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뒤늦게, 새롭게 일깨워준 각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성공과 좌절, 비극적인 죽음은 강고한 기득권층인 정치경제적 주류와는 전혀 다른 비주류였던 그가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으려 했다는 사실과 따로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신자유주의 경제의 도입, 복지정책의 후퇴 등 특히 집권 후반기의 그의 어떤 선택들을 흔쾌히 수긍할 수 없지만, 그가 임기 내내 일관되게 추구했던 국토균형발전정책의 정당성과 당위성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비주류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자기정체성과 역사적 비전이 투사되어있는 위대한 꿈이었다.

국토불균형 문제의 완화 혹은 해소야말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 모두에게 남기고 간 가장 시급한 과제이자 유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물거리다 시기를 놓쳐버리면, 그 불균형을 해소시킬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아예 사라져 버릴 테니까 말이다. 인구집중이 계속되어 수도권의 유권자 수가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훌쩍 넘어버리고 나면, 그 어떤 대통령 후보도 감히 지방화와 국토균형발전을 자신의 공약으로 내세우지 못하게 될 것이고, 국회 또한 절대다수가 된 수도권의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새 정부는 각종 신도시 개발과 재개발, 그린벨트의 완화와 해제 등 수도권 규제를 완화시키는 온갖 정책들로 그의 아름다운 꿈, 그 획기적인 기획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지방으로 이전하기로 했던 공공기관들도 미적대며 눈치들을 보고 있는 판이다. 서글픈 일이다.

최근엔 교육과학기술부의 자문기구인 대학선진화위원회가 ‘사립대학 구조조정에 관한 특별법’을 준비해놓았다고 한다. 이 특별법이 통과되어 시행될 경우, 앞으로 사립대학들은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변할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계획대로 대학의 재정상태와 함께 현재의 학생 충원율과 이탈률을 가장 중요한 객관적 판단지표로 삼게 될 경우, 현 상황에선 오로지 지방대학들이 그 희생양이 될 거라는 점이다.

문제해결의 방향이 잘못 설정된 것 아닌가? 현실적으로 지방대학들이 인구증가율의 둔화와 대입수험생의 절대숫자의 감소의 충격에 훨씬 더 취약한 상태에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방대학의 위기를 부른 학생들의 수도권 집중현상은 우리사회가 직면해 있는 심각한 지역불균형의 문제, 수십년 동안 누적되어온 과도한 수도권집중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오로지 코앞의 현실적 요구나 필요에 입각해서 이 문제를 풀어나가려 해선 안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와 국토 전체를 어떻게 가꾸고 꾸려나갈 것인가, 그 속에서 궁극적으로 대학들은 어떤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인가, 하는 총체적인 지평과 가치지향적인 질문에 입각하여 조심스럽고 지혜롭게 실현되어야 한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수도권 대학들의 과감한 정원감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 사회와 국토의 이 엄청난 비효율과 사회적 비용, 불균형을 해소시켜 줄 국토의 균형발전 정책이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그리고 건실한 지방대학의 육성과 지원은 오히려 그 정책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자칫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이 지방대학들을 고사시키고 교육의 장으로서의 지방을 사막화하여, 결국 인구와 교육기회의 수도권집중현상이 서로 등떠밀어주며 가속화되는 끔찍한 악순환 속으로 우리 사회를 돌이킬 수 없이 밀어넣게 될까봐 두렵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