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기

원주 태장동성당 주임신부
지난 8월 15일 KBS 제 1 TV는 광복절 특집으로 ‘코레아 우라! 대한국민 안중근’을 방영하였다. 필자는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다시금 안중근 의사야말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영웅이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겨레가 추구해야 할 참 가치가 무엇인지 밝혀준 평화주의자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하는 데 성공한 후 모진 고문과 여러 차례의 재판에서도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으며 1910년 3월 26일 10시 뤼순 감옥에서 사형 당했다. 동양의 평화를 이루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안의사는 자신의 미완성의 원고인 동양평화론에서 제시하였다.

이를 보면 그의 사상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잘 알 수 있다. 동양 삼국의 제휴를 통하여 평화회의 체제를 구성하고 상공업의 발달을 촉진하여 삼국의 경제적인 발전을 도모하고 이의 지원을 위하여 공동은행의 설립과 삼국연합군대의 창설과 교육을 통하여 백인들의 침략을 견제 대비해야 진정한 세계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제안 주장하였다.

어느 한 나라의 경제적인 발전만으로 평화와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의사는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양평화론>의 저술을 마칠 때까지 사형 집행을 연기하기로 약속한 일본 법원의 약속 파기로 순국을 예견한 안의사는 동생들에게 전한 유언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국민들이 서로 마음을 합하고 위로하며 상공업의 발전을 위하여 힘써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 독립의 초석임을 당부하시고 나라가 독립되면 기뻐하며 천국에서 춤을 출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체포될 때, 이등박문이 절명했다는 소식을 듣자, 드디어 폭군이 죽은 것을 하느님께 감사한다며 가슴에 크게 성호를 그은 다음 ‘대한 만세’를 외쳤다. 그의 신앙은 겨레에 대한 사랑과 따로 있지 않았다. 안중근은 아시아 선교를 하였다는 이유로 ‘도마’(多默)를 자신의 주보 성인으로 삼았으며, 자신의 이등박문 저격을 천주교 교리에서 금지한 죄라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성서에도 사람을 죽임을 죄악이라고 한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자 하는 자가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죄악이므로 나는 그 죄악을 제거한 것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상 안중근은 함부로 인명을 해치는 것을 스스로 삼갔다. 안중근은 1908년 연해주에서 의병 부대를 창설하는 것을 돕고 참모중장을 맡았는데, 이 의병 부대는 여러 차례 일본 수비대를 공격하곤 했다.

그 해 7월 함경도 경흥 부근과 신아산 등지로 진입하여, 안중근은 포로에 대한 즉결 처분도 살인 행위라고 하면서 즉결 처분을 반대하고, 그들을 석방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안중근의 낭만주의적 태도라기보다는, 살인을 금하던 천주교의 교리, 그리고 ‘만국 공법’사상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는 신앙적 확신 안에서 이등박문을 살해하였던 것이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유언을 빌렘 신부님에게 남겼다는 안중근은 3분 간 기도를 하고 사형대에 올라 동양 평화 만세를 부르고 죽임을 당했다.

호주머니에 예수님의 성화를 지닌 채 말이다.

20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 그리고 20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우리 모두 안중근 의사의 고귀한 정신을 이어받아 남과 북의 대결, 지역, 계층 세대 간의 갈등과 대립을 뛰어넘어 참으로 모두가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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