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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삶, 극락의 삶

도후 2009년 10월 09일 금요일
   
▲ 도 후

금강산 건봉사 주지
어떤 사람이 억울하게도 염라대왕의 오판으로 지옥에 떨어지게 됐다.

지옥이란 유황불 이글거리는 무서운 곳인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건물도 깨끗하고 물자도 풍부해서 불편할 것이 없었다. 이런 데를 왜 지옥이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이곳 사람들은 식사를 제대로 못했다. 음식상에 놓인 수저의 길이가 1m가 넘어서 음식을 집어 입에 넣을 수가 없었다. 환영만찬에 참석한 손님들은 음식 앞에서 서로를 밀치며 욕심만 부리다가 연회를 끝내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며칠 뒤 극락으로 가게 되었다. 누락됐던 선행기록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극락이란 곳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선 건물이나 환경이 지옥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단지 이곳 사람들은 지옥사람들보다 유쾌하고 친절한 것이 다르다면 달랐다.

극락이나 지옥이나 환경은 똑같은데 왜 이렇게 다를까. 극락과 지옥은 식사법이 달랐다. 극락에서도 1m가 넘는 수저를 사용했다.

그러나 극락사람들은 그 수저로 자기 입에 음식을 넣으려고 하는 대신 건너편 사람에게 먹여주었다.

건너편 사람도 그에게 음식을 먹여주었다. 차이는 이것밖에 없었다.

러시아 우화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인간이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먹기 위해서는 견우의 땀이 필요하고 입기 위해서는 직녀의 눈물이 있어야 한다.

남자만으로도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듯이 여자만으로도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이렇게 상호의존적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가정(假定)이지 실제가 아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연기적(緣起的) 관계라고 한다. 모두가 모두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기적 관계로 이루어진 세상을 잘사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기둥은 주춧돌의 신세를 져야 하고 대들보는 지붕이 눌러주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신세를 져야 한다. 이기주의를 버리고 이타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치가 이러한데도 인간의 삶은 돌아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다.

우리는 남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한다. 무조건 내가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높게 되어야 한다. 많은 것은 내 몫, 적은 것은 네 몫이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만인은 만인에 대해 적’일 수밖에 없다.

이리나 늑대가 돼야 겨우 이 세상에서 발붙이고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극락이나 지옥은 멀리 있지 않다. 남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마저 빼앗으려 한다면 그것이 지옥이다. 내 몫 조금 덜 챙기고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해주면 극락은 거기에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삼세인과경’에서 이렇게 가르친 바 있다.

“남에게 베푼 선행은 자기에게 베푼 선행이다. 왜냐하면 그 선행의 공덕이 머지않아 곧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에게 행한 나쁜 짓은 자기에게 행한 나쁜 짓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그 나쁜 짓의 결과는 머지않아 곧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모든 결과는 우리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극락에서 지옥으로 갈 것인가, 지옥에서 극락으로 갈 것인가.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모두들 알아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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