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 완

영월 법흥사 주지
우리는 보통 부부가 되려면 “억겁(億劫)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억겁이라는 시간 단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굳이 숫자로 말하자면 몇 십억년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겁이라는 시간에 또 ‘억’을 곱한 것이 ‘억겁’의 시간이니 그야말로 무한대의 시간이라 짐작됩니다.

반대로 우리들이 흔히 쓰는 시간개념으로 찰나(刹那)라는 말이 있습니다. 숫자로 환산하면 약 75분의 1초(약 0.013초)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찰나에도 수 백번 바뀌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고 우주의 원리는 모든 존재가 찰나마다 생겼다 멸하고 멸했다가 생기면서 계속되어 나간다는 ‘찰나생멸(刹那生滅) 찰나무상(刹那無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장황하게 시간 개념을 설명한 이유는 연말 연시를 맞을 때마다 우리 인간들의 번잡한 마음을 달래보기 위함입니다. 누구나 이 즈음에는 새로운 계획을 짜고, 지난 해를 반성하느라 분주하고, 동창회다 송년회다 정신없이 보내게 됩니다. 또 한편에서는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달래는 손길이 펼쳐지기도 하고, 한해 한해 나이먹는 것을 기뻐하는 청소년과 슬퍼하는 노년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 우리 사회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멀리 내다보면 인간(지구)의 1년이라는 시간은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고, 그만큼 한해의 오고 감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불교경전에서는 인간의 400년이 도솔천(극락)의 하루이며, 이 30일을 한달로 하고, 12달을 1년으로 4000년 한 것이 도솔천 인간의 수명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태양계가 아닌 먼 은하계의 생명체가 있다면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 인간들은 하루살이라는 동물을 빗대어 겨우 하루밖에 살지 못하면서 생로병사(生老病死)와 번뇌(煩惱)가 있으니 참으로 가소롭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구상에 인간이 출현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생태 시간은 지구 생태계 전체 시간 중에서 겨우 몇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니, 우리 인간이야말로 얼마나 나약하고 미미한 존재란 말입니까. 그 중에서도 인생(人生)이라는 유한하고도 짧은 시간을, 긴 시간인 양 착각하며 마냥 쓸데없이 허비하는 이들이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처럼 어떤 사람은 평생을 하루같이 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하루를 평생처럼 쓰는 이가 있으니, 연말연시에 우리가 반추해 볼 것은 스스로의 삶입니다. 또 한편에서는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세계 기후변화와 핵무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지구상에 인간이 출현한 시간은 수분에 불과함에도 지구를 통째로 날려버릴 핵무기와 온실가스를 초래하고 있으니 그 또한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산승(山僧)은 이제 얼마남지 않은 경인년(庚寅年)을 맞이하는 화두(話頭)로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를 제안합니다. 너와 나, 지구와 인간, 인간과 모든 생명체가 상생화합(相生和合)할 때 비로소 화기통천(和氣通天)의 평화로운 세상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의 욕심과 고집을 조금씩 양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