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건일

편집 부국장
‘빙상의 메카, 춘천을 아시나요.’

제91회 전국동계체육대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몇 년째 논란을 빚고 있는 춘천 의암실외 빙상경기장을 폐쇄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모양새이다. 빙상인들을 비롯해 도내 체육계에서는 이의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일부 경기단체의 악성 민원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빙상선수들이 있고 이들을 길러내는 학교가 있고 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 실업팀도 있다. 그런데 정작 운동할 빙상경기장이 없다. 아니 있는데 없앤다고 한다.

춘천 의암 실외 빙상경기장은 지난 1999년 동계아시안게임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아시안게임의 성공 개최를 계기로 동계올림픽 유치의 꿈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또한 80년 중반 이후 쇠락해 가던 춘천 빙상의 옛 명성을 되살리는 부활의 불씨가 됐다.

그러나 모두의 무관심 속에 빙상 춘천의 불씨는 힘없이 꺼져가고 있다.

요즘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자기 지역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전국 명소화 하기 위해 랜드마크를 만든다며 아우성이다. 그리고 잊혀있던 역사속의 명소나 풍물, 지역문화, 전설까지 찾아내 스토리텔링화 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런데 춘천만은 유독 그 많은 유무형의 자산들을 부수고 메우고 파내고 지우려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빙상의 메카 춘천 지우기’다. 1980년 초까지만 해도 ‘공지천하면 빙상, 빙상하면 춘천’을 떠올릴 만큼 춘천은 동계스포츠 아니 빙상의 메카로 전국민 마음 속에 각인돼 있었다.

춘천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온 가족들이 꽁꽁 얼어붙은 공지천으로 몰려나와 스케이팅을 즐기며 겨울의 정취를 만끽했다. 스케이트가 없어도 상관이 없었다. 그냥 강바닥 얼음판을 지치기만 해도 좋았고 약간의 돈만 내면 누구나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각종 전국빙상대회에서 상위권은 모조리 춘천과 강원도 사람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외지사람들은 춘천사람하면 누구나 스케이트를 타는 줄 알 정도였다. 그 시절에는 군대에서 매년 겨울 빙상대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선수로 거론되는 1순위는 춘천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춘천사람은 스케이트 가지러 간다며 3박4일간의 특별휴가를 받는 특혜(?)를 누리기까지 했단다. 또 그 당시에는 공지천에 두꺼운 나무판자로 만든 특설링크가 설치돼 아이스하키와 피겨경기가 심심찮게 열렸고 연고전 아이스하키시합이 열릴 때면 공지천이 관중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리라초교, 은석초교, 경희초교, 춘천초교, 춘천교대부설초교, 중앙초교…. 그 당시 이름을 날리던 초등학교 빙상명문들이다. 그리고 공지천변 좌우에는 빙상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스탠드가 설치돼 있었고 춘천을 찾은 사람이면 한번쯤 들러봄직 했을 이디오피아의 집, 에메랄드, 삼천리 모텔, 양지산장, 녹지산장 그리고 그 강변을 따라 설치된 수상주점 등등. 사진첩 속 아련한 추억들로 묻혀버린 이 모든 것이 ‘빙상의 도시’ 춘천이 만들어낸 기억속의 풍경들이다.

그러나 요즘 춘천에선 이런 풍경을 만날 수가 없다. 옛 공지천 빙상경기장 모습은 조각공원 밑에 매립됐고 스케이트를 들고 다니는 춘천사람도 이젠 더이상 없다. 그러나 춘천은 아직 빙상의 도시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실외빙상장이 있는 곳이 춘천이기 때문이다. 2007년 11월부터 가동중단상태이지만. 당초 실외빙상장을 실내빙상장으로 전환해 달라는 빙상인들의 요구가 몇 년간 예산타령으로 지지부진한 상태로 방치돼 오다가 엉뚱하게 없애는 방향으로 결론이 난 상황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번듯한 경기장을 옆에 두고 서울로 원정훈련을 다녀야 하는 선수들도 딱하지만 ‘잃어버린 빙상의 메카’, ‘스케이트 낭만’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춘천시민들의 처지가 더 딱하고 안타깝다. 빙상장 폐쇄 철회를 요구하는 도내 빙상인들의 작은 몸부림이 춘천시민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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