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건일

편집 부국장
춘천의 희망이라는 경춘선 고가철도가 올 연말 개통을 앞두고 회색빛 위용을 자랑하며 허리를 감싼다. 뒤로는 시민들의 도심생태공원이라는 밑그림이 그려진 공지천이 ‘제2의 청계천’을 꿈꾸며 무심히 흐르고…. 그 앞으로는 반듯하게 새로 뚫린 신작로와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초대형 마트가 춘천시민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신축된 공영방송국 건물이 위엄있게 자리해 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춘천의 랜드마크이자 꿈틀거리는 ‘미래춘천’의 비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런데 그곳 한 모퉁이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옹색한 건축물’이 생뚱맞게 도심의 전면으로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키 높은 함석 철벽에 가로막힌 붉은색 콘크리트 건축물이 강둑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 낯설고 어색하다. 철벽 뒤로 주차장을 연상케 하는 자그마한 운동장이 있고, 건물 옥상에는 조립식 패널로 조악하게 만들어진 빛바랜 가건물이 볼썽사납게 올라 앉아 이질감을 더해주고 있다.

이 곳이 바로 ‘강원체육의 산실’인 강원체육중·고등학교이다. 웅장한 대형마트와 6차선의 넓다란 도로 탓인지 더 작아 보이는 운동장에 뻘쭘한 일(一)자형 건물, 그 옆에 흉물스러운 컨테이너 박스, 어디를 보아도 전문체육인을 길러내는 ‘특수목적 체육학교’라는 것이 의아하다. 다만 건물 정면에 큼지막한 하얀 글씨가 이곳이 ‘강원체육 산실’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단서다. 학교 ‘이전타령’ 10년, 옮길 학교에 큰돈을 들여 건물을 지을 수도 없고 해서 임시방편으로 이렇게 저렇게 10년을 보냈단다. 훈련장인 옥상 가건물과 운동기구 창고인 컨테이너박스는 그 10년의 상흔들이다. 이는 당국의 무책임과 도민들의 무관심속에 방치돼 온 강원체육의 적나라한 현주소이다.

이전문제가 처음 거론된 것은 지난 2000년. 종합운동장의 시외곽 이전이 추진되면서부터다. 그리고 야구장과 테니스장이 매각되면서 이전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듯했으나 관계기관들의 이러저런 변명으로 차일피일 10년 세월을 보냈다. 그동안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절박한 사정을 수없이 호소했으나 해당기관들의 책임 떠넘기기에 그 목소리는 번번이 무시되고 묵살됐다. 새로운 교정, 최고·최신의 시설에서 운동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2005년 입학한 꼬맹이 중학생이 어느덧 입학했던 옛 교정에서 고교 졸업장을 받아야 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현실화 되고 있다 (현재 송암동으로 이전예정인 신축교사는 2011년 준공목표로 부지조성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지루한 책임공방과 뒷짐행정으로 이전이 늦어지는 사이 주변은 상전벽해가 되어버렸다. 선수들이 훈련하던 종합운동장에는 9층짜리 방송국과 지상 4층짜리 대형마트가 입점했고, 몸풀며 산책하던 학교앞 공원과 광장은 6차선 도로와 개발을 기다리는 나대지로 변신했으며 학교옆 기찻길은 고가복선철도로 대체됐다. 이러한 급변속에서도 ‘이전꼬리표’를 단 강원체중·고교만이 옛 모습 그대로 이곳이 지난 70년대 늪지를 메워 만든 종합운동장 ‘터’였음을 웅변하듯 초라하게 버티고 서 있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새시대가 열렸음을 공표하는 축하잔치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공영방송국이, 2월에는 대형마트가 문을 열면서, 특히 대형마트 개장일에는 3만여명의 시민들로 이 일대 교통이 마비되는 등 북새통을 이뤘다. 그리고 시민들은 입을 모아 합창했다. ‘지금이 이 정도인데 전철이 개통되면 교통 생지옥이 될 것’이라며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그 북새통 끝자락에서 떠날 날만 기다리며 오롯이 10년. 그들은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그 구석진 곳에서 ‘향토의 명예를 드높이겠다’며 오늘도 말없이 구슬땀을 쏟아내고 있다. 꿈나무들의 이같은 모습에서 강원체육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고 측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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