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 완

영월 사자산 법흥사 주지
며칠 전 흥미로운 외신 기사를 접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갖고 있던 ‘글로벌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대해 이민의 예를 들어 구체적인 사실로 증명해 보이는 내용이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35명 중 1명은 이민자이며 본국으로 보내는 돈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인터넷 휴대폰 등의 기술발달로 고국과도 끈이 끊어지지 않아 글로벌 이민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또 유엔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약 2억1400만명이 태생지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으며 지난해 이민자들이 본국으로 보낸 돈은 3170억 달러로 세계 대외원조 총액의 3배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은 첨단 정보화 기술 덕분에 뉴욕 맨해튼의 가정부가 멕시코의 아들과 휴대폰으로 통화하고 온라인으로 국민투표에 참가하며 멕시코 TV쇼를 본다고 하니 그야말로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다.

반면에 우리 대한민국의 상황은 시대를 거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6개월여간 나라를 들끓게 했던 세종시 논란은 국회에서 ‘없던 일’이 돼 버렸고 국민들을 전쟁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천안함 피격사건은 아직도 정부 발표에 대한 논란이 종결되지 않고 있다.

남북 관계는 북한의 권력세습과 맞물려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대치국면이 지속되고 있고, 국회는 여야 대립에 더해 여당 내 계파갈등으로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다. 거기에 더해 뿌리깊은 이념간 충돌은 계층간 위화감과 지역감정이라는 도화선(導火線)을 만나 폭발 직전에 놓여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극단적 종교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종교간 갈등과 배타성은 위험 수위를 수시로 넘나들고 있다.

때마침 우리 사회에 대해 같은 걱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모여 ‘나를 새롭게 바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어 가자’는 사단법인을 만들게 되었다. 평화로운 세상만들기는 나의 3가지 변화에서 출발한다.

그 첫 번째는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일찍이 서구사회는 힘을 동반한 정치 규제를 통해 사회적 혼란을 강제하며 평화를 실현해 왔다. 그러나 동양사회는 우주 만물이 한 생명이라는 연기(緣起)적 세계를 인식하고, 나와 이웃 그리고 세상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마음속의 태도 변화로 평화를 실현해 왔다. 나를 새롭게 발견해 내안에 머물러 있던 잠재적인 편견을 버리고 나를 바꿀 때 오롯한 평화가 실현 된다고 본 것이다.

두번째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글로벌 시대를 맞아 모든 존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생(相生)과 화합(和合)의 원리에 입각한 미래 지향적인 삶을 모색하는 것이 21세기 우리 사회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과제이다. 세계와 인류의 평화는 절대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상대적인 세계관으로 다양성을 인정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내 안의 평화를 먼저 만듦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평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옳다는 생각,나의 것이라는 집착을 벗어 버리고 스스로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아함경(阿含經)’이라는 불교경전에는 “싸움에 이기면 원수가 늘고 싸움에 진 괴로움은 잠자리도 불편하지만 이기고 짐을 둘 다 버리면 누우나 깨어 있으나 항상 마음이 평온하다”는 말씀이 있다. 그래서 나온 구호가 자승최강(自勝最强)이니, 자신에 대한 집착을 극복하고 이룩한 명예나 권력, 재물은 누구도 쉽게 무너뜨리거나 빼앗을 수 없다는 진리이다. 그러한 자기변화와 수행을 통해 자신이 속한 조직과 사회, 국가와 세계를 바꾸어 나갈 때만이 진정한 세계평화를 이룩할 수 있음은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이미 증명됐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