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백운

태고종 강원교구 종무원장

(춘천 석왕사 주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면 그것은 곧 신뢰이다. 만약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지 못한다고 상상해 보자. 인간관계에서 불신풍조가 만연함은 물론 개인과 단체, 국가와 국가간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최근에 우리사회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재래시장이나 백화점이나 할 것 없이 물건하나 사는데도 믿고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값싼 수입품을 국산품으로 둔갑시키는 일, 가짜를 진짜로 속여 파는 일에 죄의식마저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죽하면 대중가요의 노랫말에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고 했겠는가.

그런데 이제는 이런 불신의 고리가 더 넓어졌다.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 위장전입하고, 정치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당명을 바꾸어 가며 철새처럼 이동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학력까지도 위조하는 대학교수, 연예인, 종교인들을 보면서 누가 누구를 믿고 의지해서 살아가야 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정말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은 피해를 보고 거짓말이나 속임수를 쓰는 사람은 성공을 하는 이상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거짓말이나 속임수를 개인기로 여기는 사람들까지 생겨날 정도가 되었다. 물론 마술사처럼 속임수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속임수를 이용한 촬영기법으로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낸 사진작가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속임수는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 들어가는 식품첨가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으로 우리들의 입맛을 속일 뿐이다. 아무리 속임수로 사람들의 눈과 귀, 입맛을 사로잡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일 뿐, 언젠가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일시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내부는 더 피폐해져감을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요지경 세상 속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남을 속이지 않는 것 못지않게 자기가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옛말에 불기자심(不欺自心) 즉,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남을 속이지 말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뜻이다.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선조들은 남을 속이는 것은 좀도둑이라면 자신을 속이는 것은 큰 도둑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자신을 바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지금 큰 도둑인지 좀도둑인지도 모르면서 요지경 속에 하루살이처럼 살아가고 있다. 현대 정보사회에서 신뢰구축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경쟁시대에 국가와 사회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최상의 전략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얼마동안 속일 수는 있다. 또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남을 속이지 말고 그리고 속지도 말아야 한다. 상대에게 한번 속았을 때는 속이는 사람을 탓할 수 있지만 두 번씩이나 속았다면 속은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가을의 푸른 하늘 아래에서 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나는 지금 혹시 누구를 속이려 하고 있지 않은지, 그리고 누구에게 속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나를 속이고 사는 인생은 아닌지 뒤돌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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