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해창

제자감리교회 춘천연탄은행대표·목사
나는 산을 좋아한다. 그 늠름하고 당당한 모습 때문이다. 눈보라와 비바람이 쳐도 산은 무서워 떨거나 살려 달라고 빌며 애걸하지 않고 끄떡없이 언제나 거기 그대로 우뚝 서 있다. 산은 세월이 빨리 변해도 안달하지 않고 의젓하고 점잖게 그곳에 변함없이 서 있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산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온통 눈이 덮여 죽은 것 같은 한겨울에도 산은 소리 없이 살아서, 움직이는 수많은 생명들이 숨 쉬고 있다. 살아있지 않은 산은 산이 아니다. 산행을 할 때마다 수많은 생명들의 생명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산은 우리 마음을 높은 곳으로 승화시키고 우리 정신을 높은 곳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산행을 하자면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차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올라서면 넓게 펼쳐진 세상이 열린다. 내가 살아온 세상이 열리고, 하늘이 가까이 다가선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산이 주는 무한한 자유 때문이다. 산꼭대기에 오르면 더 큰 세계 속에 있는 더 큰 나 자신을 발견하고, 더 높은 하늘로 날아가 보고 싶어진다. 산은 자질구레한 일상의 걱정 근심과 사회적 속박에서 해방되어 한없이 신비한 세계를 잠시 경험하게 한다. 산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작은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온 세상을 가슴에 다 안을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들게 된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산은 사색과 명상의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산이 품고 있는 언어는 세속에 물든 나에게 순수함을 일깨우는 화두(話頭)이다. 흙, 바위, 계곡, 절벽, 바람, 풀, 나무, 꽃, 동물들은 그 하나 하나가 맨 처음 세상을 알려주며, 전달해 주는 신비스러운 메시지이다. 산은 인간의 언어로는 불가능한 그 무엇인가 더 원초적인 것을 말해주고, 더 깊은 것을 보여주며, 더 본질적인 것을 전달해주고, 더 순수한 아름다움을 드러내준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산도 산에 길이 없으면, 산은 그 누구와도 벗할 수 없다. 길이 없는 산은 아무리 산이 좋아도 가까이 할 수 없다. 얼마 전 화천에 있는 Y산을 산행했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춘천호와 파로호, 그리고 새남바위, 층계바위, 병풍바위, 칼세봉의 모습은 절경이었다. 그 비경(秘境)이 주는 감동은 좌석 당 수 십 만원씩 호가하는 ‘오페라’의 웅장함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사람 발길이 뜸한 곳이어서 그런지 산행 할 때 길이 잘 보이지 않아 애를 먹었다. 몇 번이고 정상가는 길을 망설였고, 돌아오는 길도 헤맸다.

그때마다 길을 잃지 않고 산행을 만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름 모를 누군가 가는 길을 표시해 놓은 ‘붉은 리본’ 덕분이었다. 아마 그 ‘붉은 리본’이 없었다면, Y산의 감동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슬픈 추억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나뭇가지에 매어 있는 ‘붉은 리본’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오랜 세월 산행을 하면서도 그날 새삼 느꼈다. 그리고 그 붉은 리본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작은 다짐도 해보았다.

모두들 세상 살기가 힘들고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 모를 누군가가 세상 곳곳에서 붉은 리본의 역할을 하고 있어서 세상은 따뜻하고 희망이 있고 아름다운 것이다. 붉은 리본은 산행하는 모든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한다. 거칠고 험한 산도 아름다운 산행이 되게 하고, 눈 덮인 차가운 산도 따뜻한 산행이 되게 한다.

Y산의 붉은 리본이 나의 산행을 바른 길로 인도해주었듯이 인생의 수많은 갈림길과 고비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올곧은 길을 보여줄 수 있는 붉은 리본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