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순직

원주 드림교회 담임목사
지난 13일 일본과 인근 바다에서 강도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일본 열도와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현재까지 정확한 희생자 수를 통계 낸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리고 또 다른 재앙(원전 방사능 유출이나 폭발 등)이 닥치지나 않을까 염려되는 상황에 있다.

이렇게 일본이 큰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우리나라 여론은 크게 두 가지 반응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잘되었다는 의견과 또 하나는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어 돕자는 의견이다. 일본의 참사를 보고 잘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돌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일본이 우리나라에 어떻게 했는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했던 나라다. 일제 식민지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과 아픔의 비참함을 표현할 수 없다. 그 기간이 무려 40년이다. 40년 동안 자유와 인권이 없었으며 청년들의 미래도 꿈도 없었다. 백성의 생명이 이슬과 같이 여기던 시대가 식민지 역사이다. 더욱이 일본은 수십년이 지나왔지만 여전히 영토문제로 우리나라를 괴롭혔고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사적 사건을 거짓으로 기록해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일본의 재난에 기대치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의 대지진을 바라보는 또 다른 의견은 희생자와 피해현장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일본이 저지른 역사의 일은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악하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격적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러기에 과거의 일과 현재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들에 대하여, 원망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잠시 멈추자는 것이다. 지금은 단순히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존엄적인 생명을 소유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소중하다면 다른 나라도 소중하다. 우리의 생명이 소중하면 타 국민의 생명도 소중하다. 그래서 이들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어떠한 의견도 우리는 무시하지 않는다. 민족의 소리이며 가족의 의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목회자로서의 눈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본다.

성경의 역사 중 요나라는 선지자가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요나 선지자에게 니느웨 백성들에게 가서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시키겠다고 전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간다. 니느웨가 멸망 당하는 것이 요나에게, 정확히 말하면 북이스라엘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이다. 북이스라엘에게 앗수르는 원수 같은 나라이다. 그래서 요나는 이 니느웨가 멸망하길 원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간다. 나중에 요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도 사랑하시지만 자신의 원수의 나라인 니느웨 백성들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감정과 인간의 생각을 뛰어 넘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포괄적이며 완전하다. 하나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적용된다.

일본의 대참사를 바라보는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아야 될 것이다. 우리는 민족의 아픔을 충분히 경험하였다. 아픔을 경험한 사람은 아픔을 당한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다. 그 아픔이 깊을수록 깊은 아픔을 당한 사람을 돕고 싶어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본을 향해 긍휼어린 마음을 갖기를 원하실 것이다. 전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 보아도 우린 하나님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일본에 대하여 선을 베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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