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에 ‘파랑새 장학금’을 지급한 기관이 있었다. 춘천경찰서였다. 당시에 국산 담배 중에 ‘파랑새’가 있었는데 그 때의 담배 중에서는 아마도 최저가의 담배이었던 것으로 생각이 든다. 당시 춘천경찰서 직원들이 한 달에 하루를 파랑새로 바꿔 흡연을 하고, 남은 돈을 모아 지급된 장학금이 <파랑새 장학금>이라고 했다.
그 장학금을 나의 친구 N이 일 년 인가를 받아 수혜를 보았다. 당시에는 여관과 중국집에서 일하거나 사상계와 새 벗 등의 책을 가판해서든지 아니면 가정교사로 학비를 조달하던 터라 그 장학금은 N에게 있어 꽤나 요긴하고 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을 받을 실력이 없었던 나로서는 선망의 대상일 뿐이었다. 퍽이나 부러웠다. N과 나는 서로 형편이 유사해서 남달리 친한 사이였다. 동병상인으로 고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과 일찍이 편부 편모아래 있었던 것 때문에 정상적인 중학교 과정을 밟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통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계속해서 학비를 일하여 조달하며 수학해야 했던 것 등이 그랬다. N은 머리가 좋고 근면했으며 인내심이 강했다. 그래서 장래가 총망 되었고, 그것을 인정받아 파랑새 장학생이 되었던 것이다. 금액으로는 얼마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장학금을 받는 N이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N은 그 후 S대학을 졸업하고 교육·언론·문학 분야에 종사하며 지역발전을 위해서 적지 않은 활동과 기여를 했고, 지금도 여전하다. N이 잠시 받았던 그 ‘파랑새 장학금’은 내가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에 내내 무슨 꼬리표같이 나를 따라 다녔다. 그래서 사치하지 아니하고 절제하고 분수에 맞게 생활하는데 큰 몫을 담당케 했다. 지금도 여전하다. 그래서 때로는 병들고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며 절제를 습관화 하게 만들었다. 파랑새 장학금은 한 고학생의 장학금으로만 역할하지 않은 것이다. 장학금을 받는 당사자에게 뿐만 아니라 이것을 보는 친구의 건강한 삶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장학금이었다.
이제는 고희를 넘긴 시점이지만, 아직도 ‘파랑새 장학금’은 고마움이고 은혜이며 생활의 나침반이었다라고 생각되어 감사할 뿐이다. 성서는 말씀한다. “범사에 감사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