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기선

천주교 홍천 본당 신부
2007년에 소설가 이정명 씨가 펴낸 장편 소설 <바람의 화원>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옵니다. 김홍도가 신윤복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표현한 대목입니다.

“그녀는 바람이었고 나는 그녀가 흔들고 간 가지였다. 나는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혼자 흔들리며 몸을 떨었다. 만약 나라는 가지에서 꽃이 핀다면 그것은 그녀가 피운 꽃이고, 열매가 열린다면 그 또한 그녀가 열리게 한 것일 터이다. (…) 그녀가 없는 나의 삶은 사계절이 없는 일 년 같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닌 겨울, 겨울, 겨울, 겨울….남아 있는 나의 생은 오직 그녀를 그리워하기 위한 시간이었고, 그녀를 생각하기에만도 나의 삶은 모자랐다.”

인간의 애틋한 사랑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는다면 모두들 행복할 것입니다.

“당신은 바람이었고 나는 당신이 흔들고 간 가지였습니다. 나는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혼자 흔들리며 몸을 떨었습니다. 만약 나라는 가지에서 꽃이 핀다면 그것은 당신이 피운 꽃이고, 열매가 열린다면 그 또한 당신이 열리게 한 것일 터입니다….”

어쩌면 이리도 내면의 감정을 잘 표현했는지요. 미움과 원망의 감정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던 사람도 이런 편지를 받게 되면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한겨울 돌덩이처럼 싸늘하고 묵직하게 가슴 한가운데 자리한 감정의 응어리가 봄눈 녹듯 사라질 것입니다. 사랑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목석같은 사람도 뜨겁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풍진 세상을 낙원으로 느끼게 해주고 원수까지도 끌어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면 영원성과 맞닿은 표현을 사용하기까지 합니다. “생명을 다 바친다”는 표현도 부족하여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고 맹세까지 합니다. 그 표현의 진위를 따지며 흰소리로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나름의 진정성이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표현을 접한 사람도 일종의 감정이입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간이라는 동질성을 통해 전해지는 일종의 행복 바이러스입니다. 감염이 되어야 함께 행복해집니다. 신앙도 이렇게 전파됩니다. 어느 날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고백이 나와 너의 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대상을 사랑하고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같은 고백입니다. 같은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고백은 그야말로 영원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하고 완전하며 절대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매일 미사에 자주 등장하는 화답송의 시편 84장은 더 없이 좋은 예입니다. 어쩌면 이리도 아름다운지요.

“만군의 주님 당신 계신 곳 얼마나 사랑스럽나이까. 주님의 뜨락을 그리워하며 이 영혼 여위어 가나이다. 살아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이 몸과 이 마음 환성을 올리나이다. (…)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하느님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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