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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사회복지

이한오 2011년 11월 04일 금요일
   
▲ 이한오

성공회 춘천교회 관할사제
“하느님, 우리들의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시고 풍족히 채워주소서.”

가끔 듣는 놀라운 기도이다. 아무리 하느님이라도 어떻게 모든 학생들을 다 대학에 보낼 수 있으며, 어떻게 두 사람의 시장을 한꺼번에 당선시킬 수 있겠나?

하지만 지금까지의 교회는 헌금만 하면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기도해 주었다.

남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한국개신교의 신뢰도가 끊임없이 실추하는 이유의 핵심은 물질주의, 상업화, 세속화로 평가된다. 그 결과 맹목적, 반사회적, 비상식적 종교행태로 나타났는데, 이 모든 것은 교회가 사람들의 이기적 욕망에 봉사한 결과로 나는 생각한다.

흔히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 한다. 이는 창조주 하느님이 독생자 예수를 구원자로 보내셨는데, 그 이유가 당신이 지으신 이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성서말씀(요한 3:16)에 기초한다. 성서대로 생각하면 하느님은 온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예수를 보내셨지, 특정 교회의 교인들만을 위해 그리하신 것이 아니다. 더욱이 이기적 욕망으로 똘똘 뭉친 육신덩어리에 불과하거나, 타종교와 비종교인에 대해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특별히 사랑한다고 볼 이유가 전혀 없다.

이기적 욕망은 절제되거나 최소한 조절되어야 한다. 성서의 눈으로 보면, 그 욕망은 궁극적으로 소멸되어야 할 무엇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부질없고 이기적인 욕망을 부채질하면서 그 욕망의 충족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욕망 속에 잠재된 뿌리 깊은 죄악을 자기비판적 정신으로 폭로하고 소멸시키기 위해 매진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요즘 교회를 비롯한 모든 종교기관이 이른바 ‘사회봉사’라는 이름으로 펼치고 있는 다양한 복지사업은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당장의 끼니가 없는 가난한 사람에겐 먹을 것을 주고, 기회를 상실한 사람에게 다시 출발하게 하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겐 기술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은 마땅히 국가와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국가의 부족한 일손을 돕고 이웃을 섬기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사회복지와 관련된 일을 한다면, 최소한의 원칙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종교의 본질이 단순히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봉사가 아니라, 인생에는 눈에 보이는 현실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메신저라는 점이다. 국가와 지자체도 종교의 이러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법적인 관계로만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사실 복지의 필요가 증대하고 있는 이유는 신자유주의적 사회체제의 부정적 결과이지,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가 아니다. 그러므로 종교인에겐 사회적인 약자로 소외된 이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동시에, 사회체제의 구조적 죄악을 고치려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하는 이중의 의무가 있다.

순수한 사랑의 봉사도 불의한 체제의 유지와 이기적 욕망을 확대재생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만약 종교계의 사회복지활동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보람을 느끼기 힘들다면, 이런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여 대처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종교의 사회복지는 불의한 국가체제의 현실유지에 자기도 모르게 이용되거나, 자신들의 불행한 처지를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으려는 이기적 욕망에 봉사하는 들러리가 되지 않도록 늘 깨어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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