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넘긴 노인들을 기로(耆老)라 부르며 공경한 것은 동양 고래의 미풍이다. 기(耆)는 늙은이(老) 스승(師) 어른(長)을 뜻하는 말로 두루 쓰이지만 원래 사람나이 60세를 가리킨 말이었다. 70살을 고희(古稀), 77살을 희수(喜壽), 88살을 미수(米壽), 99살을(白壽)라 하는 것은 한자 문화권이 만들어낸 흥미로운 나이 표현이다. "사람나이 70세는 예로부터 드문 일(人間七十古來稀)"이라는 두보의 시구에서 고희가 나왔고 희수와 미수는 한자를 파자해서 만든 말이다. 백수는 한살이 모자라는 백살이라는 뜻으로 백(百)에서 한 획을 뺀 백(白)을 썼다.

'나라 상감도 늙은이 대접은 한다'는 말은 사실(史實)에 근거한 속담이다. 조선 태조 3년(1394) 임금의 명에 따라 기로소(耆老所)를 설치하고 70세가 넘은 정2품 이상의 노신(老臣)들을 특별히 대우한데서 나온 속담이다. 60세 이상된 노인들에게만 응시기회를 준 과거를 기로과(耆老科)라 했다. 늙은 신하가 사직원을 내면 임금이 궤장(机杖)을 하사해 만류하기도 했다. 나이 많아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관에서 가벼운 명아주지팡이(靑藜杖;청려장)를 만들어주는 것도 아름다운 풍습이었다.

양양향교와 유도회양양군지부가 지역 노인 500여명을 모셔다 기로연(耆老宴)을 베풀어 잔잔한 감동을 준다. 기로연은 지역의 목민관들이 1년에 한번씩 열어 노인을 공경하던 전통적 경로행사였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기로연의 구체적 사례가 있다. "고을 수령은 일년에 한 번씩 기로연을 베푼다. 60세 이상 노인을 초청해 밥 떡 국을 대접하되 80세 이상 노인에게는 반찬 4접시, 90세이상에겐 여섯 접시를 드리고 백세 이상 노인은 8가지 반찬을 갖추어 아전이 직접 집으로 찾아뵙도록 한다." 양양 기로연에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훈풍을 느낀다.

盧和男논설위원 angler@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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