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가득히 / 사람들이 내려온다 / 전생에 살았던 사람들이 내려온다 / 그리운 / 그리운 사람들이 / 펄펄펄 내려온다 // 오늘은 기쁘다 / 서로 기쁘다 // 그리운 사람들이 / 이 세상 고향 잊지 않고 / 펄펄펄 내려온다' 임창현의 '눈' 중 몇 구절이다. 난장판인 세상에 이렇게 눈이 내려 마치 이 땅이 축복받은 것처럼 하얗게 변하면 정말 시인처럼 복된 상상을 할 만도 하다.

강원도 춘천 출신 유승우 시인은 눈을 또 이렇게 읊었다. '요한복음 삼장 십육절이 / 하얗게 하얗게 내리고 있다 / 춥고 긴 겨울밤을 / 메마른 풀잎들이 떨고 있는 들판이나 / 알몸의 나뭇가지 울고 섰는 언덕의 / 누리를 하나님은 이처럼 사랑하사 / 아드님 맑고 고운 / 아이얀 살을 찢어 / 누구냐, 가슴 다쳐 피흘리는 나무는. / 온 누리가 하나의 커다란 십자가로 / 아프게 아프게 세워지고 있는 밤 / 요한복음 삼장 십육절이 / 하얗게 하얗게 내리고 있다'

이렇게 올해 강원도에 눈이 많이 내리는 것을 보고 지구 온난화와 관계 지어 기상이변으로 지목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게만 볼 것이 아니다. 이런 폭설은 옛날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신라 때에는 2세기 7세기 9세기 등 세 차례에 걸쳐 한여름에 눈이 내렸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파사왕 26년 경주에 내린 눈은 6척 즉, 2 미터도 넘는 폭설이 내렸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 시에서처럼 눈을 예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좋은 콧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이번 겨울의 눈은 이제 좀 지겹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이번에 또 폭설이 내렸다. 교통사고는 또 얼마나 날까,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설해를 입을까, 도시에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눈에 미끄러져 다칠까. 이런 생각이 앞선다. 안됐지만 현대 사회에서 눈은 더 이상 낭만으로만 남는 것이 아닌 것 같다.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