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알렝 레네' 감독의 프랑스 영화 '밤과 안개'(Night and Fog, 1955년)가 최근 우리나라 한 영상제에서 '나치의 집단수용소 경험을 다룬 가장 강렬한 필름'이란 소개로 상영됐다. 이 영화는 흑백과 컬러를 오가며, 수용소의 과거와 현재로 병치(倂置)시킴으로써 대학살의 잔혹함을 현재로 끌어들이고 있다. 수용소의 생존자가 대본을 쓰고, 나레이션을 한 것도 다큐멘터리 효과를 극대화시킨 부분이다. 같은 이름의 일본영화가 지난 85년 개봉된 적이 있다. 어느 결혼 피로연에 모인 사람들의 현재, 과거, 대과거를 회상시켜 교착시키는 구성으로 일본 학생 운동의 문제를 신좌파적 입장에서 비판하고 있다. 개봉 3일만에 극장에서 내려지는 흥행 참패를 당했지만, 당시로서는 야심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두 영화에서 '안개'는 단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역사의 진실과 가식 사이에 존재하는 상징물로 다뤄지고 있다.

며칠 째 전국을 뒤덮고 있는 안개가 얼마 전 '밤과 안개'의 과학적 본질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생각케 하고 있다. 4, 5일에 한 번 꼴로 호반의 도시를 안개의 도시로 만드는 농무의 정체는 알고 보면 '산성 안개'라는 것이다. 미속 촬영으로 화면에 담긴 안개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성분을 분석해 보면 금속 구조물과 문화재를 부식시키는 주범, 수분과 미세 먼지,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의 결정체라는 것이다. 과학적 본질로만 따진다면, 안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역사의 진실과 가식 사이에 존재하는 상징물도 아니고 그냥 오염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안개 정국의 그 안개는 어떤 것일까. 국민의 눈에는 그게 산성 안개 같은 것이다.


함광복 논설위원
hamlit@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