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태학자가 산불은 '식물과, 동물과, 미생물을 삼림생태계로부터 추출하는 사건'이라고 실험실 분석처럼 정의했다. 산불이 숲의 수분 보유력을 잃게 해 유량을 증가시키는데, 이렇게 되면 물의 속도에너지가 증가해 물에 씻겨 가는 토양 영양소 양이 극도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더구나 유기물에 잘 저장돼 있던 영양소들은 분해되고, 영양소 창고 구실을 하는 토양, 식물, 동물, 미생물의 기능이 모두 엄청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산불이 반드시 해롭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나무가 없어지는 대신 영양소 순환이 빨라져 초본식물의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초식동물 밀도가 높아지고, 더 다양해진다는 것이다. 못 믿겠거든 주기적인 산불 영향을 받으면서도 생태계 보고인 미국 엘로우스톤 국립공원을 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두 주장 모두 이론일 뿐이다. 지난해 영동산불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그 자리를 가보면 안다. 산불의 두 얼굴 중 어느쪽이 진짜인지.

정선 민둥산 억새 밭에 불을 놓아 가을 억새꽃이 더 만발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 산불의 그 부정적 효과가 머리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북제주 오름의 '들불 축제'나 창녕 화왕산 '억새 밭 불지르기'는 산불의 그 긍정적 효과만 머리에 가득하기 때문일까. 엄밀히 따지고 보면 불을 다루는 지혜와 그럴 줄 모르는 무지의 차이일 뿐이다. 유현종의 장편 '들불'은 전설적 영웅 임여삼을 중심으로 민중 스스로 겪고 자각하여 들불처럼 일어서는 동학운동을 한국적 가락으로 담아낸 소설이다. 아마 정선 사람들이 스스로 겪고 자각하여 들불처럼 일어서는 문화운동일 것이다. 요즘 아라리 가락같이 "올 봄엔 민둥산 억새 밭에 불을 지르자"는 소리가 잔설 준령을 넘고 넘어 들려오는 것은.

咸光福 논설위원hamlit@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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