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김씨 개조(開祖)인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이 왕위 쟁탈전에 밀려 강릉으로 내려가면서 "명주는 나의 어머니의 본향(本鄕)이다."고 했다. 김주원은 명주에 와서 주관육익(周官六翼)을 관장하였는데, 그 이전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던 날 김주원은 신하 최대나(崔大奈)와 함신(咸信) 등이 궁에 들어가 거사할 것을 권했으나 옳지 못하다 하고 먼저 가족을 명주로 옮긴 다음 홀로 말을 타고 임영(臨瀛)에 들어와서 병사를 해산시켰다.

김주원은 이렇게 하여 어머니의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이 김주원의 어머니가 바로 연화(蓮花)부인이다. 결혼하기 전 강릉여자 연화가 얼마나 유명했는지 그녀와 관련된 설화가 지금도 전해진다. 신라 진평왕 때 무월랑(無月郞)이란 사내가 강릉서 벼슬을 하던 중 어느 날 연화 아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서로 사랑하다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만일 그대와 전생에 인연이 있다면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고백했다.

연화의 집은 강릉 남대천 부근 별연사(別淵寺)에 있었다. 연화는 연못에 키우던 고기에게 편지를 써서 주며 무월랑에게 전해 줄 것을 부탁하니, 고기가 남대천을 따라 내려가 동해에 이르러 얼마 뒤 무월랑에게 잡혀 편지를 토해내게 되고, 그리하여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강릉 남쪽 남대천 옆 연화의 양어지(養魚池) 바위 위에 월화정(月花亭)이란 정자를 지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음미하곤 했다.

이렇게 옛부터 강릉사람들과 남대천은 사랑 인생 등 꿈으로 행복으로 삶의 현장으로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었다. 편지를 물고 바다로 갈 수 있는 연어 송어 은어 황어가 사라진 오늘의 더럽혀진 남대천이 아닌 그때 그 시절의 맑고 아름다운 남대천과 말이다. 지금 강릉사람들은 이 남대천에서 다만 목 놓아 '한전(韓電) 배짱'을 절규할 따름이다.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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