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120년 고려의 16대 임금 예종이 평양에 거둥해 팔관회를 열었다. 팔관회가 한창 진행중인데 두 장군이 말을 타고 들어왔다. 93년 전 대구 공산 전투에서 고려태조 왕건의 목숨을 구하고 장렬하게 전사한 신숭겸(申崇謙) 김락(金樂) 장군이었다. 화려한 관복 차림에 손에는 홀(笏)까지 쥐고 있었다. 놀란 왕이 즉석에서 두 장군을 애도하고 위로하는 시(悼二將歌)를 지어 읊었다.

"두 분 공신의 상을 뵈오니/깊은 감회가 넘칩니다/공산의 싸움터 적막한데/두 분 빛나는 업적이 평양에 남았군요/충의는 천고에 빛나고/생사는 한 때/임군 위해 두 분 목숨 바쳤으니/우리 왕국의 터전이 보존되었습니다" 그 때 예종이 불렀다는 향가식 노래도 지금 전해온다. "님을 온전케 하시기 위한/그 정성 하늘까지 미치심이여/두 분 넋은 이미 가셨지만/일찌기 지니셨던 벼슬/여전하시고/아, 돌아보건대 두 분 공신의/곧고 곧은 업적은 오래 오래/빛나시리라"

그 두 사람 고려 개국공신 중 장절공 신숭겸의 묘소가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벌인 공산(대구) 전투에서 위기를 맞았을 때 신숭겸은 왕건을 오동나무 숲에 숨기고 그의 옷으로 갈아입어 혈전을 벌인 끝에 전사했다. 목숨을 구한 왕건이 건국 후 첫팔관회를 열었을 때 짚으로 두 장군의 상을 만들어 상석에 앉히고 그 앞에 술을 부었는데 잔의 술이 없어지고 두 가상이 일어나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팔관회 때마다 두 장군의 상을 모시게 된 것이다.

엊그제 장절공 묘소에서 열린 춘기 제례에 지금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TV드라마 '태조 왕건'의 신숭겸(능환장군)역을 맡은 배우 김형일씨가 아헌관으로 참석해 화제가 되었다. 신의와 지조가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시대에 천년의 꽃으로 피어나는 공의 충절이 뜨겁다.

盧和男 angler@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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