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송강 정철은 관동팔경을 유람하고 조선 가사문학의 백미(白眉)라 할 '관동별곡(關東別曲)'을 남겼다. 금강산을 돌아보고 푸른 동해 바닷가로 내려서면서 그는 이렇게 썼다. "산중(山中)만 매양 보랴 동해로 가자스라… 명사(鳴沙) 길 익은 말이 취선(醉仙)을 빗기 실어 바다를 곁에 두고 해당화(海棠花)로 들어가니 백구(白鳩)야 날지 마라 네 벗인줄 어찌 아니." 금강산 자락 산영루에서 몇잔 마신 술로 거나해진 그는 취한 신선처럼 말등에 올라앉아 흰모래 바닷길로 들어섰고 무더기 무더기로 붉게 피어난 해당화 숲 사이에서 날아오르는 새들을 보았을 터이다. 동해안 금강산 길에 옛날부터 해당화가 피어 쪽빛 바다 하얀 모래 붉은 꽃의 수채화같은 풍경을 이루었음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해당화를 약재로 쓴다고 한 포기 두 포기 캐내기 시작해 지금 동해안 바닷길엔 해당화를 구경하기 어렵다. 해당화를 중국사람들은 수화(睡花)라고도 부른다. 당나라 현종이 사랑한 양귀비가 밤늦도록 임금과 술을 마시고 아침 늦게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데 임금이 부른다기에 황금히 일어나 거울 앞에 앉아보니 홍조 띤 얼굴이 해당화처럼 불그레했다. 임금이 그 모습을 보고 "아직도 술이 덜 깼느냐"고 묻자 양귀비는 "해당화가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질 못했습니다(海棠睡未覺)" 하고 대답했다. 수화는 거기서 나온 이름이다.

동해안 금강산 길이 해당화로 붉게 물든다. 강도민일보가 5년생 해당화 2만그루를 고성군에 기증하고 고성군이 이 해당화를 금강산 길에 심기로 한 것이다. 동해안 희고 깨끗한 모래밭에 해당화 붉은 꽃그늘이 번지면 '명사십리(鳴沙十里) 해당화'의 옛 정경이 새롭게 살아나고 북고성 삼일포의 신선이 꽃길에 취해 '명사길 익은 말'을 타고 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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