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백운

불교태고종 강원교구 종무원장

춘천 석왕사 주지

‘사십이장경’에 이르기를 ‘무릇 사람이 온 천지의 귀신을 섬긴다 하여도 그 부모님께 효도함만 못한데 부모님이야말로 최고의 신이기 때문’이라 하였고 ‘인욕경’ 에서도 ‘선의 최상은 효도보다 큰 것이 없고 악의 최상은 불효보다 큰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효도란 종교를 갖고 있거나 갖고 있지 않거나를 막론하고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이유와 조건을 떠나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자 책임이라 하겠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부모님 은혜를 저버리고 불효자가 되려 하겠습니까마는 애쓰고 애써도 은혜에 보답하지 못함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따뜻한 어느 봄날 한 아들이 늙으신 어머니를 등에 업고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꽃구경 간다는 아들의 말에 늙으신 어머니는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시건만 정작 아들은 깊은 고뇌에 빠져 묵묵히 걸어갑니다. 이들 모자(母子)는 들길을 지나 어느덧 오솔길로 접어들었는데 무거운 침묵을 어머니가 먼저 깨뜨렸습니다. “얘야, 힘들지 않니. 좀 쉬었다 가자구나. 힘이 들면 도로 집으로 가는 것이 좋겠구나” 아들은 힘들까봐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깊은 숲속으로 걸음을 재촉합니다. 이윽고 어머니는 짚이는 것이 있었던지 손에 잡히는 대로 솔방울을 따서 가는 길목에 띄엄띄엄 떨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말없이 길을 걷던 아들은 어머니의 행동이 이상스러워 물었습니다.“어머니 왜 솔방울을 따서 버리세요?”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얘야, 네가 나를 여기에 두고 집으로 돌아갈 때 길을 잃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솔방울 떨어뜨려 놓았으니 잘 살펴서 가려무나” 하시며 계속해 솔방울 따서 길에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부모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사랑스러운 자식의 손에 의해 죽음의 길을 향해 가면서도 끝까지 자식을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대신 걱정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일찍이 정철 선생은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분곳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같은 은덕을 어디대여 감사릿가.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닯다 어찌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옛말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라고 하였으니 부모님 살아계실 때 지극정성으로 받들어 모시기 바랍니다. ‘부모은중경’에 보면 자식이 다 자란 뒤에는 부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눔에도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눈을 흘기고 눈동자를 굴린다.

출입하고 왕래함에 있어서도 어른께 말씀드리기는커녕 말과 행동이 교만하여 매사를 제멋대로 처리한다. 부모가 나이 들어 쇠약하여 모습이 보기 싫게 되면 오히려 남이 볼까 부끄럽다고 괄시와 구박을 한다. 또 아내에 대한 약속은 모든 일에 잘 지키면서 부모님의 말씀과 꾸지람은 전혀 어렵고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효도는 이론이나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실천으로서만이 가능케 되는 것입니다. 원효스님께서는 ‘효도란 나를 생각하기 이전에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효도를 제대로 못하는 것은 평소에도 그렇지 않았을지라도 경계에 부딪치면 부모의 입장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집 피우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게 되므로 자기중심적인 생활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효도 받으려고 효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지은 행위에 대한 참다운 교육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며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하지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소임과 책무를 충실하게 이행하여 행복한 가정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지도록 다함께 정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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