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의 민족은 '같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언어와 풍습, 문화를 공유하는 인간집단'을 말하지만 내면적 의미에서의 그것은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 한 인간 무리의 집단무의식 속에 잠재된 서로에 대한 정신적 교감'일 것이다.

이같은 민족의식에 대한 자각은 큰 위기를 당할 때 일수록 더욱 찬란한 빛을 내기 마련으로 잠재된 힘을 결집시켜 위기를 극복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전세계가 몽골 기마군단의 말발굽 아래 초토화되던 12∼13세기 고려의 운명도 예외는 아니었다. 30년 넘게 계속된 수차례의 침입을 버텨내고 결국엔 국가와 민족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었던 힘의 바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단군을 정점으로 한 민족에 대한 자각과 동질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李承休(1224∼1300)는 민족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을때 단군역사 사상의 시조로 평가되고 있는 '제왕운기'(帝王韻紀·보물418호)를 통해 민족정신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李承休는 지금의 경북 고령인 경산부(京山府) 가리현(嘉利懸) 출신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삶을 외가인 삼척 두타산 기슭에서 보내 '두타산거사'라는 별칭을 얻은 자랑스런 강원의 인물인 것이다.

9세 때 독서를 시작한 그는 고려 문화계를 대표했던 李奎報의 학문을 이어 받은 崔滋의 가르침에 힘입어 29세에 과거에 올랐다.

삼척으로 금의환향한 그는 몽고군의 제4차 침입을 맞게 되는데, 삼척지역 항몽전 기지였던 요전산성과 두타산 구동을 오가며 몽고군의 4, 5, 6차 침입에 맞서며 40세까지 10여년간 통분과 시름의 세월을 보낸다.

李承休가 관직에 오른 것은 고려가 원나라 치하에 놓이게 된 원종 11년.

경흥부(慶興府·현재 강릉) 서기로 부임한 그는 관리들의 폐단을 고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면 당한다. 그러나 그의 파면은 왕명에 따른 재조사에 의해 무죄로 밝혀지고 그를 모함했던 탐관오리들이 오히려 관직과 재산을 몰수 당한다.

이같은 일로 주위의 원망을 산 그는 동주부사로 좌천되는데 이때부터 호를 '동안거사'로 정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李承休는 원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원활히 이어가면서 고려의 주체성 회복에 관심을 기울였다. 원종 14년, 원나라 태자책봉 하례사로 추천된 그는 연경을 방문했는데 그가 원나라에서 지은 문장은 元 世祖를 비롯한 관리들을 감동시켰다고 전한다.

고려의 자주성과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李承休의 노력은 끊이지 않아 나라의 의례와 의식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면서 고려의 전통과 풍속 보전에 힘을 쏟았으며 왕에 대한 직언도 사리지 않아 그의 일생은 파직과 은둔의 연속이었다.

두타산 龜洞으로 돌아온 그는 농사를 지으며 7년간 독서에 전념, 儒·佛·仙의 이치를 꿰뚫는 대학자의 사상체계를 확립한다.

그러나 몽골의 간섭이 오래되면서 몽골의 풍속이 크게 유행하고 고려인들의 자주의식이 희박해지는 등 민족의 운명이 위기를 맞게되자 책과 함께 은둔하던 그는 1287년 '帝王韻紀'를 지어 충렬왕에게 바쳤다.

민족의 역사를 시로 읊은 '帝王韻紀'에서 그는 고구려·백제·신라가 모두 단군의 자손들이 세운 나라이며 우리는 오랜 역사를 가진 한 핏줄임을 역설, 단군역사사상의 표상을 마련하고 우리민족에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가르쳤다.

이후 75세의 노구를 이끌고 충선왕의 개혁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충렬왕 26년(1300) 두타산 구동에서 눈을 감는다. 확고한 의식을 가진 민족은 어떤 어려움도 이기고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한 민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 삶이었다.

확고한 민족역사관으로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는 李承休의 사상은 삼척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다례제와 백일장 등의 행사를 통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삼척시는 국역 '동안거사집'을 발행해 이승휴 연구를 확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 지난 90년 관동대학교 박물관팀은 천은사일대 유허지 지표조사를 실시하고 지난해 '천은사 이승휴 유허지 발굴조사 보고서'를 펴낸데 이어 지난 9월 8일 '이승휴유허지'가 마침내 국가사적지로 지정됨으로써 선양사업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98년 발족된 '이승휴 선양 기념사업회'(회장 張乙炳)는 이번 국가사적지 지정을 계기로 오는 4일 오전11시 두타산 천은사 경내에서 열리는 다례제를 비롯 선양사업에 더욱 박차를 기한다는 계획이다.

우리 민족은 큰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단군을 정점으로 힘을 모아 이를 극복하는 지혜를 보여왔다. 서로를 적대시했던 지난 50년을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는 요즘, 李承休선생이 준 가르침은 남과 북 모두에게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趙眞鎬 odyssey@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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