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민

홍천 백락사 주지스님

이 찬란한 오월, 꽃은 피고 새는 노래하며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 찬란하다. 지고 피는 꽃들로 요란스럽고 축복의 의미들이 중첩된 이 오월이 올해는 유난히 쓸쓸하다.

나는 80학번이다. 어느 시대인들 격변기가 아니겠냐만 그 시절은 역사가 요동쳤던 시절이었고 대학 새내기의 추억은 낭만적이지 못했다. 오월 휴교령이 세월이 흘러도 기억되고 동기들의 데모는 남의 일이었지만 파편처럼 튀어 나오는 의미들로 조합된 삶의 방관자 같았던 내 인생이 문득 황야(荒野)같다는 생각이 아직도 그대로이다.

부처님이 성불하신 보드가야에서 처음으로 설법을 하신 녹야원까지 250㎞를 걸어가신 부처님의 길도 황야(荒野)이다. 성불을 하신 뒤 5주 동안 깊은 즐거움에 계시다가 일체중생들을 위해 법을 깨우쳐 주려고 마음을 먹지만 먼저 진리를 전하고 싶은 스승들은 이미 돌아가셨고 같이 수행하던 5비구들은 먼 곳에 있었다. 내가 깨친 이 진리를 중생들이 알 수 있을까? 황야를 묵묵히 걸어가신 부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세상이 거친 들판 같다. 생존의 법칙이 약육강식의 논리이고 승단(僧團)도 황야의 무대가 되어버린 현실. 오월 들판에서 밤이 새도록 일을 해도 내 삶이 황야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고 이 세상은 결국 황야일까? 의문이다.

무식해서 용감한 것일까? 용감해서 무식한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우리 사는 삶들이 너무 거칠다는 생각이 선입견이면 좋겠는데 주변은 너무도 많은 비상식과 비겸손으로 채워져 있는 것 같고 내 자신도 아상(我相)에서 벗어나지 못한 죄인이다.

배신은 상식이 되고 변절은 순리가 된 주변, 겸손은 찌지리이고 교만은 능력이며 비정도(非正道)가 세상의 조화가 된 황야에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나의 언어와 생각은 황야에 걸맞게 거칠고 행동은 난폭하다. 따듯했던 눈빛과 미소는 정녕 사라졌을까?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은 정체성, 희망을 잃어버린 막막함 때문에 불면했던 오월이 이렇게 끝이 나나 했는데 작은 위로를 주신 고마운 이웃과 믿음을 아끼지 않은 신도님, 내 거친 황야의 오두막인 것이 새삼 고맙고 놓지 말아야 할 작은 불씨처럼 세상을 향한 기도와 희망을 피워본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비난할까? 나의 허물이고 나의 과보이다. 변명과 게으름으로 지탱한 시간에 물러설 수 없는 참회를 올리며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행복할 수 있는 공간, 거친 들판 속의 극락이 이곳임을 약속하고 싶고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자기 자리 자신의 허물만 보자. 그리고 타인의 아름다움만 헤아리자. 뒤도 보지 말고 옆도 보지 말자. 이제는 황야의 끝자락이다.

약속의 땅도, 희망의 땅도 내 마음의 문제이다.

오월 끝자락, 부처님 오신날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우리 함께하는 이 길이 부처님께서 걸어가신 황야처럼 결국 법석(法席)이 되어야하고 이웃을 위해 나눌 수 있는 길이 되어야 하며 무더기로 피어난 화엄의 꽃이 되어야한다. 세상은 수없이 많은 꽃으로 이루어진 황야인 것을 눈을 감고 헤아린다.

희망은 꿈꾸는 자의 것이 아니고 만드는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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