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의 얼굴을 가진 터키(Turkey)

우리는 그동안 의정활동비에서 얼마씩 모아 만든 경비로 비회기인 3월1일에서 8일 까지 비용의 부담과 일정상의 문제로 에집트는 아쉬운대로 제외하고 터키와 그리스를 여행하기로 했다.

혹자는 의원의 외유라고 비난하지만 우리는 테마를 가지고 사비로 가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12시간의 비행끝에 도착한 터키는 신석기시대인 기원전 6500년에 최초의 부락을 형성 했다고 한다. 차탈허유크시대에서 현재까지 몇 세기에 걸쳐 번영했던 화려한 문화는 현대문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터키는 한반도의 3.8배의 면적과 6천여만명의 인구에 99%가 이스람교를 믿는 농업국가로 5천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단일한 알타이어계인 터키어를 사용하며 인종은 대부분이 터키인(turks)인으로 되어 있다. 국토의 97% 아시아에 3%는 유럽의 발칸반도에 속해 있는 특수한 지정학적인 특색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EC의 준가맹국이기도 하다. 이러한 입지적 여건과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업화를 이루지 못해 국민소득이 약 3천불에 불과하고 일 불이 75만 리라(TL)로 하루의 호텔 숙박료가 1억3천만 리라(TL)이나 되는 만성인플레이션으로 돈 계산이 힘들 정도의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

터키는 푸른바다와 녹음으로 뒤덮힌 숲을 볼 수 있는가 하면 척박한 대지와 만년설의 산준령도 볼 수 있고 동양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와 신화와 역사가 살아서 현재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들이 터키를 다양한 감정과 표정의 나라로 만들었나보다.


◇역사와 문화, 왕조의 흥망이 숨쉬는 이스탄불(istanbul)

세계 5대 도시인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라는 이스탄불은 오스만 제국에 의해 오늘의 이름으로 자리한 1천6백년의 고도로서 콘스탄티노플, 비잔티움이라고도 불렸던 곳이다. 수도를 앙카라로 옮길 때까지 이 도시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다.

거리의 모습은 옛것과 현대가 뒤섞여 있었다. 그 옛날의 성터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현대의 도시속에 유물로 남아 있었고 다양한 외제차들과 구형차들이 뒤엉켜 질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과다한 인구집중 현상과 환경파괴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서두르지 않고 생활하고 있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착한 모습으로 대하고 있었다.

이스탄불의 특징은 돔과 첨탑이라고 한다. 이슬람교 국가인 터키에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많고 대부분의 모스크들이 돔과 첨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스탄불에는 약 150명 정도의 교민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일본을 잘 알고 있었고 한국에 대해서는 6·25 참전국 이면서도 50대 후반의 일부 사람들외는 잘 모르고 있었다. 특히 축구가 생활화된 나라이면서 월드컵이 한국애서 개최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우리는 준비해간 강원도 홍보물을 주면서 한국을 알리는 일도 하였다. 마침 식당주인 엄유진씨가 이화여대대학원을 졸업한 강원도 영월 출신이여서 강원도 터키 명예협력관으로 위촉하기로 하였다.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도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발상의 전환, 지역의 특성을 인위적으로 창출해내는 창의력이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다. 강원도가 가지고 있는 청정자연도 가치인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 강원도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청정자원을 우리의 자원으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이스탄불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왕조의 흥망이 숨쉬고 있는 터키의 첫날 밤을 맞았다.<계속>

<李勳·도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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