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순직

원주드림교회 담임 목사

자연만물의 모든 세계에도 나면서부터 가르침과 배움이 있습니다. 미물들도 태어나면서부터 생존을 위한 능력과 가치를 위한 어미의 가르침과 그것을 배우는 새끼의 배움으로 인하여 그들은 존속과 번창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경이롭기 조차한 발전은 모두 가르치는 교육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진행이 되어 왔는데, 이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선생과, 배우는 학생과, 그리고 선생과 학생사이의 가르치는 도구와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3가지 중요한 만남이 있다고 합니다. 부모님과의 만남이요, 배우자와의 만남이요, 스승과의 만남입니다.

한 여자가 너무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기였을 때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습니다. 하나뿐인 동생도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안질이 악화되어 두 눈을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저주하며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죽지도 못했습니다. 자신을 저주하며 절망 가운데 있는 그녀가 어느날 바아바라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바아바라 신부는 그녀에게 하나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시고, 너를 향한 놀라운 계획이 있다는 것을 들려주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그녀의 가슴 속에 새겨지는 순간 절망의 어둠이 걷히고 새로운 소망의 햇살이 비쳐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기나긴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와 보스톤에 있는 파킨스 맹학교에 입학하여 6년간의 노력 끝에 가장 뛰어난 우등생으로 졸업한 여인에게 한 신문사는 수술비를 지원합니다. 이렇게 새롭게 인생의 눈을 뜨게 된 그녀의 이름이 바로 셜리번입니다.

어느 날 셜리번은 가정교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곳에서 맹인이요 농아요 청각장애를 가진 헬렌 켈러를 만나게 됩니다. 셜리번은 무려 48년 동안 헬렌 켈러를 위해 모든 사랑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고통 받는 인류에게 소망의 등불이 된 위대한 헬렌 켈러를 길렀습니다. 한 위대한 스승의 헌신과 사랑이 한 인간의 운명을 바꾸었으며 나가서 인류 전체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럼으로 가르치는 자는 다음과 같은 자세로 가르쳐야 합니다.

첫째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학교교육이든 가정교육이든 신앙교육이든 가장 중요한 본질은 사랑입니다. 아무리 좋은 지식을 전하고, 좋은 환경을 제공해도 사랑이 없는 교육은 헛수고입니다. 성경의 사도 바울은 해산의 수고를 통하여 자녀를 낳는 심정으로 제자를 양육했습니다. 교육의 위기는 바로 사랑의 부재입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는 모든 교육은 물 없는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아비의 사랑의 심정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둘째 선한 양심을 가르쳐야 합니다. 선한 양심을 지닌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아무리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선한 마음과 행동이 없는 인생은 가치가 떨어집니다. 사도 베드로 또한 모든 사람이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양심은 마음의 눈이요, 빛이기 때문에 양심의 눈이 밝으면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고, 양심이 어둡게 되면 자신은 옳다고 행동하지만 사실은 옳지 않으며, 어두움 가운데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양심은 건강한 사회의 골격이며 그 나라의 에너지입니다.

셋째 긍정적 사고를 가르쳐야 합니다. 긍정적인 수준의 사람은 장애가 발생했을 경우 우리의 삶에는 이런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라고 여기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사회적 지지망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긍정적 생각에 사회에 도움도 요청하고 도움을 받는 그리고 도움을 주게 되는 신뢰적 관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사람은 난관이 찾아오게 되면 이 난관에 자기에게만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여 문제 해결보다는 문제를 피하고 결국 자신을 자악하며 자신을 이렇게 버려두는 가족과 사회를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부정적인 사람은 모든 면에서 문제해결보다는 실패를 맛보기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리를 잡기가 힘들어집니다.

사회는 우리가 모여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모였기에,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사회는 한 개인이 아닌 ‘더불어’, ‘함께’ 이루어갑니다. 그러므로 사회의 희망이 있음을 가르쳐 주는 긍정사고를 가르칠 때, 사회에 필요한 사회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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