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열

영동본부 취재 국장

“역사적인 성공의 절반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에서 비롯됐고, 실패의 절반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됐다.”

저명한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 교수가 인류사를 통찰하면서 설파한 경구다. 뜬금없이 이 말을 떠올리는 것은 관광·피서지 동해안의 현실이 역사의 교훈을 곱씹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성∼삼척, 329㎞에 달하는 강원도 동해안 해안선은 예로부터 수도권을 비롯한 도시민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피서지로 꼽혀 왔다. 언필칭 ‘국민 피서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매년 7월∼8월 해변(해수욕장) 개장을 마치고 나면, 올해는 몇천만명이 찾았으니 하는 통계수치들이 자랑처럼 신문 지면을 장식했고 올해도 도내 동해안 90개 해변이 지난 7월 초 개장하면서 목표로 내건 피서객 유치 수치는 3000만명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강원도 환동해본부는 도내 여름 해변이 폐장기에 들어간 지난 22일 올해 피서객이 2000만명에 머물 것으로 잠정 추산했다. 목표에서 무려 1000만명이 빠지는 것은 물론 지루한 비로 인해 피서 경기가 곤두박질 쳤다는 평가를 받았던 지난해 2230만명에 비해서도 90% 수준에 그치는 것이다.

물론 몇천만명이 방문했느니 하는 수치가 동해안 피서 경기를 절대적으로 대변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입장료를 받는 유료가 아닌 이상 드넓은 해변 백사장으로 출입하는 피서객을 일일이 체크하면서 계수화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자치단체들이 발표하는 피서객 수치가 스포츠 경기장 입장객처럼 높은 신뢰도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중요한 것은 피서지에서 느끼는 실제 체감 경기인데, 그것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바닥권을 면치 못했다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최고의 지명도를 갖추고 있는 강릉 정동진마저 1년 대목이나 마찬가지인 피서철에 평일 영업을 포기한 업소까지 생겼다는 취재기가 나올 정도니 경기 침체 상황을 실감할 수 있다.

혹자는 여수 엑스포와 런던 올림픽 등 초대형 이벤트 행사가 해변 개장기에 겹치면서 영향이 컸다고 하고, 지난 7월말∼8월초 피서 절정기에 너무 심한 폭염이 이어지면서 바닷가 보다는 산간 계곡을 선호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그러나 속된말로 다른 곳(것)에서 이유를 찾는 그런 면피성 분석보다는 올해 상황을 ‘위기’로 보는 보다 절박한 현실 인식이 동해안 발전을 위해 더 필요하다.

2차선 도로위에서 10시간 이상을 허비하는 고행을 각오하고라도 여름철에 동해안 행을 고집하던 것은 이제 추억이면서 향수가 됐다. 수도권은 물론 전국 각지 풍치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수많은 리조트 등 휴양 시설들이 들어서 있고, 연중 관광·휴양객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즐길거리가 가득한 거대한 물놀이 시설에 송곳하나 꽂을 틈이 없을 정도로 피서객이 빼곡히 들어찬 지난 여름의 보도 사진은 오늘의 피서 트렌드를 대변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여름 해변이 폐장 즈음에 들어선 지금, 자치단체들은 테마·체류형 상품 개발과 해변∼산간계곡 연계형 피서 환경 조성 등의 대응책을 강구하겠다는 방침을 다시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동해안이 장거리 이동에 따른 고생을 감내하면서도 기꺼이 찾아오는 ‘국민 피서지’로 위상을 곧추세우기 위해서는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도 청정 자연환경으로 치면 우리가 제일인데, 작년에는 비 때문에 망쳤고 올해는 올림픽이나 엑스포 등 대형 이벤트에 밀렸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당장 내년도 기대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짜내는 대책이 가장 치열한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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