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정록

경제부장

현 정부 들어 대기업 친화적인 정책이 추진되면서 낙수효과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낙수효과는 대기업 및 부유층의 소득이 증대되면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 경기가 부양되고, 전체 GDP가 증가하면 저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소득의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논리를 의미한다. 재벌기업들은 최근 10여년간 낙수효과가 증대되고 있다며 향후에도 보다 기업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야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재벌기업의 주장과는 달리 그 효과가 얼마나 골고루 스며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무분별한 재벌기업의 공세가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시점에 그늘도 그만큼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부와 재벌기업들이 내세우는 수치상의 성과와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최근 춘천 인력사무실에서 만난 소규모 건설업체 사장은 공공부문에 불고 있는 BTL(Build Transfer Lease)사업에 큰 불만을 토로했다. BTL은 예산이 부족한 정부나 자치단체가 돈 많은 대기업들로 하여금 공사를 하게하고 장기임대형식으로 임대료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 사장은 춘천지역에서 시공 중인 BTL사업에 대해 “말 그대로 하청업체만 죽어나가는 사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BTL의 경우 일감이 없는 지역 업체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최저가 입찰로 참여하게 된다”며 “그러다보니 비용을 맞추지 못한 지역 업체들은 부도가 나거나 떠나고 결국 대기업들 배만 불려주게 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공사비는 정부와 자치단체가 예산으로 꼬박꼬박 보전해 주고 공사는 지역 업체들이 최저가로 해주니 ‘꿩먹고 알먹고’식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BTL로 추진되는 원주 하수관거사업의 경우 총 사업비는 1000억원 남짓이지만 향후 20년 동안 시설임대료를 포함해 2400억 원 정도를 시공사가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자치단체는 정작 내상을 입은 지역 업체에게는 뒷짐을 지고 있다. 임대료 형태지만 실제 공사비를 부담하는 자치단체가 주인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다보니 대기업의 일방적인 횡포는 더욱 심화되는 것이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경제민주화는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다. 헌법에 보장돼 있는 경제민주화는 대선후보별로 강조의 방점이 다르게 찍혀있기는 하지만 정책적으로는 재벌에 대한 규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노동권 보장 등으로 압축되고 있다.

그러나 그 정책들이 대선을 앞둔 시점에 표를 겨냥한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정책의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지역 업체와는 무관한 재벌개혁, 생존과는 거리가 먼 상생, 일자리 없는 노동권과 같은 논의들은 보기에 따라서는 부질없어 보이기까지 하다. 반재벌 친노동의 아이콘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자인했던 마당에 정책의 방향이 좌향좌로 가든우향우로 가든 그것은 그대로 시장의 영역, 다시 말하면 자본의 영역 내에서의 ‘배냇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대형 국책사업들이 줄어들자 지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자치단체들은 마치 무슨 횡재라도 한 것처럼 이들의 시장 진입을 반기고 있다. 강원도내 어느 도시는 대기업이 골치 아픈 시유지를 사줬다고 대형유통센터에 초고층 아파트까지 덤으로 얹어주었다.

이들 대기업들의 무차별한 진출이 계속되면서 지방 곳곳에서는 지역 중소상공인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계속되고 있다. 그것조차 대기업들이 되뇌는 낙수효과라고 부른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자치단체들이 시민의 세금으로 이들을 맞이했다면 조금이라도 지역의 입장에서 자기주장을 펼쳐야 한다. 법과 제도의 지원을 받고 있는 대기업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좀 더 치밀하고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것은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지역 살리기지만 작게 보면 세금을 내는 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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