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호

뉴미디어 부장

전직 유명 야구선수 조성민씨가 지난 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따른 사회적 충격을 반영하듯 일주일이 지난 지금, 그의 죽음과 관련해 한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할 수 있는 기사 만 해도 수 천 건에 이른다. 매체마다 악성 댓글과 근거 없는 소문이 조성민 씨를 숨지게 했다며 한국 사회의 병폐를 개탄하는 진단을 앞다퉈 내놨다. 그렇다면 언론은 조성민 씨와 관련한 보도를 하면서 스스로 만든 보도 준칙에 얼마나 충실했을까.

언론은 유명인이나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 등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 시 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인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를 우려해 ‘자살에 관한 보도준칙’을 만들었다.

지난 2004년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이 자살 이후 자살 사건이 잇따르자, 당시 보도에 대해 반성하며 한국기자협회와 자살예방협회 등에서 함께 만든 것이 ‘자살보도 권고 기준’이다. 이 권고 기준은 자살은 전염되며 자살보도가 자살을 유인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유족들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말 것, 자살방법을 자세히 보도하지 말 것, 자살자를 미화하지 말 것, 속보나 특보 경쟁들을 자제할 것, 자살의 원인을 단정적으로 보도하지 말 것 등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조성민 씨 관련 보도를 보면 아직도 자살 보도가 위험수위에 있다는 우려를 씻을 수 없다.

제목만 놓고 봐도 ‘최진실 따라 한 자살 1000명, 조성민은…’, ‘최진실-조성민 사랑도 인생도 허무한 것을…’, ‘자고 있는 듯 편안한 모습’ 등 자칫 염세적 사회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제목이 여전하다.‘여자친구 이별통보 받고 석류음료를 섞은 소주 2잔을 마신 후…’, ‘신고한 00, 동거녀 아닌 여자친구’, ‘원망스런 표정의 준희…‘대체 왜?’ 등 자살방법을 자세히 보도하거나 유족들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내용도 많다.

지난 2011년 5월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가수 고 채동하 씨의 빈소에 모인 사진기자들이 ‘모든 매체 사진기자들에게 공지합니다’를 통해 맺은 보도협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사진기자들은 빈소 내 스케치는 전체 사진기자 풀(pool)로 빈소가 차려진 첫째 날만 진행하고, 모든 매체 사진기자는 빈소 풀 취재를 제외한 유가족, 조문객 취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약속도 과도한 취재경쟁에 무용지물이 됐다.

조성민 씨 자살 이후 연이어 발생한 부산에서의 8명 자살 사건에 대한 보도도 아쉽다.일부 방송은 목격자 증언 등을 내세워 ‘쪼그려 앉은 채 기대 있고 여자는 침대에 있고 또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 있고…’, ‘출입문과 창문은 청테이프로 막혀 있었고 다 타버린 착화탄 4개가 발견됐다’ 등등 집단자살 현장 모습과 자살 방법을 자세히 묘사했다.

문제는 이 같은 언론의 대대적인 유명인 자살과 관련한 보도가 일반인의 후속자살을 최대 14.3배나 높일 수 있다는 데 있다. 한국자살예방협회에 따르면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씨 자살 후 자살건수는 당초 2월 700명에서 3월 1300명으로, 동일한 자살방법도 2월 300건에서 3월 750건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또 최진실 씨가 사망한 지난 2008년 10월은 그해 9월에 비해 자살자 수가 65%나 증가해 베르테르 효과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방아쇠 이론’으로 설명한다. 자살 위험군에 있는 사람이 보도에 자극을 받아 자살을 실행하거나, 심각한 위기에 빠진 사람들이 그 해결책으로 언론의 자살 보도를 참고해 방아쇠를 당기게 되는 ‘방아쇠 효과’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1987년 오스트리아의 자살보도 실험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당시 오스트리아에서는 언론에 ‘자살보도 지침’을 배포하고 언론이 이를 적극 준수한 결과, 1988년 자살률이 급격히 감소했다. 오스트리아의 자살보도 지침에는 자살 보도를 하되 자살 외의 대안 제시, 남겨진 유가족들의 고통, 자살의 원인과 배경, 자살 징후 표기, 자살하지 않고 다른 해법을 찾은 사람들의 사례 등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 국민 10만 명 가운데 한해 33.5명이 자살을 한다. OECD국가 중 8년 연속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해마다 급증하는 자살은 어느 새 한국인 사망 원인 3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사회 공동체를 심각히 위협하고 있는 자살을 막기 위해 언론이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고 제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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