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열

영동본부 취재 국장

수도권에서 보면 강릉은 참 먼 곳 이었다. 서울에서 400리 이상 떨어진데다 백두대간 고산준령까지 버티고 있으니 먼 거리와 자연 지리적 제약 때문에 강릉이나 서울을 오가는 길은 여간 힘든 길이 아니었다.

수도권이 무한 팽창 일로를 걷던 산업화시대에 강릉, 영동권은 그래서 시대적 화두인 개발·발전과도 거리가 먼 지역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대처로’ 향하는 ‘이촌향도(離村向都)’의 세찬 물결 앞에서 전국의 지방이 속절없이 위축될 때 백두대간에 가로막힌 영동권은 더 큰 소외와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지능형 고속도로가 전국을 종횡으로 내달리고, 고속철도가 무한질주를 뽐내는 시대에 고성∼포항 동해안은 여태 종단 고속도로나 철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자연자원에 의지해 지역세를 유지해 왔으니 그 낙후의 실상이 안타깝고, 아프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수도권에 나라 인구의 절반이 몰려 말 그대로 송곳하나 제대로 세울 수 없는 포화 상태가 되자 지역균형발전론에 무게가 실렸다. 수도권이 거의 독식하고 있는 사람과 돈을 분산시켜 고르게 발전시키자는 의도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가 만들어지고, 혁신도시도 곳곳에 이름표를 내 걸었다.

그러나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인위적 행보에서도 영동권은 소외됐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목표로 전국에 10곳이나 조성되는 혁신도시도 영동권은 외면했고, 정부기관들이 줄지어 입주한 세종시는 과거 과천시보다 거리상으로 더 멀어졌다.

이대로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낙후는 대물림 돼야 하는가? 정녕 일자리를 창출하고, 인구를 유입시킬 대안은 없는 것일까? 서울에서 멀어 지역발전 희망조차 그렇게 멀어지는 것 같았던 강릉에 최근 의미있는 변화상이 감지되고 있다.

‘2018 동계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원주∼강릉(122.2㎞) 복선 전철 공사가 본격 착공하고, 기업유치와 민자 발전소 사업자 선정, 대규모 휴양·레저시설 건립 등이 이어지면서 강릉에 고정 사업을 개설했거나 준비 중인 대기업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포스코가 지난해 옥계에 1단계 마그네슘 제련공장을 준공했고, 강동면 일원의 민자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이 최근 ‘제6차 국가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되면서 2개 대기업이 또 강릉과 인연을 맺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호텔현대경포대가 강문동 기존 호텔 자리에 15층 호텔 신축공사를 본격화하고, 동양그룹 계열의 동양생명과학이 옥계면 일원에 ‘동계올림픽’과 연계한 대규모 힐링리조트를 건설한다는 계획아래 강릉시와 협약을 체결하는 등 관광·레저 시설을 건립 또는 추진 중인 여러 업체를 포함해 기존 사업장까지 합하면 줄잡아 10개 이상의 대기업이 강릉에 둥지를 틀고 있다. 산업화·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던 곳에 산업화의 중심 세력이면서 최대 수혜자인 대기업들이 잇따라 명함을 내밀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낄 만한 변화상이다.

기업은 주지하다시피 이윤 창출을 최우선으로 한다. 바꿔 말하면, 수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곳은 철저히 외면하는 것이 생리다. 냉혹하다고 할 수 있는 이 같은 기업 논리를 현재 강릉에 불고있는 대기업 사업장의 증가상에 대입하면, 향후 강릉에서 이윤을 창출하고, 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시그널이 되기도 한다. 최근 기업들의 ‘강릉 행(行)’은 신(新)사업 진출을 위한 기업 차원의 전략적 필요에다 지역의 유치 노력이 더해진 결과이기는 하지만, 세종시나 혁신도시처럼 인위적·작위적 집합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고무적이다.

더 나아가 강릉·동해시 일원 8.25㎢가 최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기업들의 강릉행 여건은 더욱 좋아지고 있다.

강릉을 신사업지로 택한 대기업들은 지금 지역사회에 다양한 투자협력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투자협력 계획이 선거철에 표심만 유혹하는 ‘공약(空約)’ 처럼 공수표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관광문화도시의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지역경제 기여 효과를 극대화해야 하는 것이 대기업과 만난 강릉의 새로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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