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호

춘천 그리스도의 교회 담임목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착각 중에 하나는 많이 배우고, 많이 알면 다 되는 줄 안다. 그래서 교육에 열을 올리고,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는 일에 시간과 돈을 쓴다. 이것은 그 자체로는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지식을 가지는 것 하고,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는 것 하고는 다른 것이다. 법학교수나 윤리학자라는 것과 법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 가장 윤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것은 지식이 곧 그 사람이요, 그의 생활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식이 자신의 삶이 되고 생활이 되려고 하면 치러야 할 값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치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알거나, 가르치는 것으로 자신의 완성이 일어난 줄 착각하는 것이다. 달나라에 무엇이 있다는 지식은 그냥 수용하면 된다. 그러나 법이나 윤리적인 지식은 자신의 희생이 구체적으로 따르지 않으면 자기 인격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성경이나 불경을 읽고 그것을 이해해도 그것을 지키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형식적인 신자가 된다. 종교의 경전에 대한 이해가 사람을 자연히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단지 내용을 이해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안심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오늘 종교의 강단에서 지식을 심어주는데는 성공하였지만, 그들에게 죄 된 행동들을 버리고 자신을 경전에 굴복시키는 것을 일러주는 데는 실패했다. 본 훼퍼는 믿음과 순종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로 보았는데 그는 “믿는 자들만이 순종할 것이며 순종하는 자들만이 믿는 것이다”라고 했다.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 자들은 믿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승마(乘馬)를 배우는 사람들은 말에서 떨어질 때마다 낙마 턱을 낸다고 한다. 말에서 떨어졌으니 그만큼 기술이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에서 떨어지는 만큼 유능한 선수가 탄생되는 것이다. 서부 영화에 나오는 명사수들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논문이 끝날 때 즈음 그도 명사수(名射手)가 되었다는데 이것을 이상히 여긴 사람이 질문을 했다고 한다. “명사수가 되는 비결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는 “맞추던 못 맞추던 2만발만 쏘아 보십시오”라고 했단다. 행동은 목적을 이루어 주는 것은 아니지만 행동하지 않고 실천하지 아니하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면 실천은 어디에서 오는가.

노르망디 귀족 출신인 알렉시스드 토크빌은 1831년 교도소 조사를 위해 미국을 다녀온 뒤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명저를 남겼다. 그는 영국에서 건너간 신세계 주민들을 집중 연구한 뒤 미국의 번영을 예견한 탁월한 인물이었다. 그가 당시 미국사회에서 발견한 덕목은 바로 ‘복종’이었는데, 미국은 당시에 정의와 법률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권위에 대한 복종이야말로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승복이나 복종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의 기본이다. 이것이 미국의 힘이요 번영의 동인이었다는 것이다. 예하는 말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선생이 되고, 박사가 되고, 법관이 되고, 정치가가 되면 그런 사람은 문제아가 된다. 그것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말이 바로 예이기 때문이다. 경전이던, 법이던 윤리이던 그 사실적인 내용을 이해만하고 그것에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이나, 사회는 자기를 기만하는 지식으로 위장한 거짓의 집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지식이 인격이 되려면 나를 죽이고 그것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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