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궁창성

서울본부 취재팀장

1975년 8월 25일 청와대 접견실.

한국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22년이 지난 이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브루스 클라크씨 등 6·25참전용사와 부인 20명을 접견했다. 이 자리에는 1951년 홍천전투에 미 7연대 중대장으로 참전했던 레이먼드 데이비스씨와 미 25사단 사병으로 양구전투에 참전했던 어네스트 웨스트씨도 초청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여러분의 거룩한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참전중 실명한 다렐 루프씨에게 다가가 두손으로 루프씨의 양손을 꼭 잡고 악수했다. 루프씨 부인과도 악수를 나눈 다음 자리를 같이 한 영애 근혜양의 손을 이끌어 루프씨의 손에 잡혀주며 “내 딸.”이라고 소개했다. 루프씨는 “저는 25년 동안 실명한 채로 살아왔습니다. 제 처의 눈을 통해 (한국이) 발전을 이룩한 것을 보고 저의 실명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라고 말해 접견실은 일순간 숙연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여러분이 한국전에서 희생을 하고, 실명한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여러분의 희생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우리는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후 38년 동안 우리는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선진화에 진입했다. 196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미만이었던 우리는 2012년 기준 1인당 GDP가 2만3500달러다. 또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하며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2010년 서울에서는 의장국인 우리의 주재로 G20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됐고, 2012년에는 역시 의장국인 우리 주재로 서울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려 핵테러 차단을 위한 국제적 공조방안을 논의했다. 6·25당시 우리에게 도움을 줬던 국제연합(UN)에서는 반기문 사무총장이 활약중이고, 우리는 UN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한데 이어 2018년에는 동계올림픽을 평창에서 개최한다. 한복, 한식, 한국어 등이 ‘한류’와 ‘한국문화(K-culture)’의 이름으로 지구촌을 감동시키고 있다. 6·25를 전후해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 개도국에 원조를 제공하는 공여국으로 우뚝섰다.

2013년 7월 27일 낮 청와대 충무실.

존 키 뉴질랜드 총리, 영국 글로스터 공작,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등 6·25 참전국 대표 27명과 전·현직 UN군 사령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참전국 대표 초청 오찬이 열렸다. 38년 전 분홍색 치마 저고리를 입고 한국전에서 두 눈을 잃은 다렐 루프씨와 인사하던 대통령의 딸은 이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외빈들을 맞이하며 감사인사를 건넸다. 박 대통령은 “저와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어려웠던 시절 우리를 도운 국제사회의 고마움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 도움을 주고 세계평화에 기여해서 여러분의 뜻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어려울 때 우리에게 힘을 주고 헌신을 아끼지 않고 동반자가 되어 주었던 참전국들과 함께 더 나은 지구촌을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탤 것입니다.”

미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기념 공원에는 미 국민들이 참전용사들에게 바치는 글귀가 대리석에 새겨져 있다. “우리는 한번도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를 지키라는 조국의 부름에 응했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들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이 우리의 친구, 지구촌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UN군 참전 60주년과 정전 60주년을 맞아 나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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