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宮昌星 경제부장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난 14일 오후 3시30분쯤 양양군 서면 용천마을. 막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맞으며 들어선 현북면 어성전으로 가던 415번 지방도는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양양읍 월리마을과 용천마을을 이어주던 용천교는 상판과 교각이 반토막이 나 남대천서 나뒹굴고 있다. 자원봉사활동을 마친 춘천 석사감리교회 버스와 법무부 보호관찰 버스가 뒤뚱대며 흙길을 힘겨운듯 스쳐 지나 간다. 봄마다 복숭아와 배꽃이 그림같던 용천마을은 인적마저 끊겼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한남초등학교도 적막하다. '개성있는 나, 함께하는 우리 학교'라는 교훈이 무색하게 태극기만이 하릴 없이 뻘밭이 돼버린 교정을 내려다 보며 펄럭인다. 마을 아낙들이 강변에서 진흙과 뒤덤벅이 돼버린 옷가지를 빨고 있다. 운동화와 구두대신 장화가 제격인 진흙탕 길 옆으로 '제8 특공부대 장병 여러분 고맙습니다','수재민 여러분 힘내세요'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강바람에 흔들린다.
 W자로 무너져 내린 다리를 곡예하듯 건너자 자갈밭이 돼버린 섬버덩 논 중간중간에 승용차들이 처받혀 있다. 과수원에는 떨어진 배가 진흙 위에서 시커멓게 썩어가고 있다. 반백의 부부가 지하실에서 뻘을 퍼내다 말고 하늘을 멍하니 쳐다본다. 돌고지로 가던 다리도 어김없이 무너져 흔적조차 없다. 자갈밭이 돼버린 논에서 벼들이 돌틈 사이로 파랗게 싹을 띄우고 있다. 수리(水里)로 올라가는 산기슭 아래, 집집마다 구멍이 뻥뚫린 지붕을 수리하고 있다. 수해가 적은 본동의 굴뚝에선 때이른 저녁준비를 하는 듯 연기가 피어 오른다. 가둔지 수리교의 상판도 개울 한 가운데 나가 떨어져 있고 교각은 반만 남아 이곳에 다리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뚝저구탕이 맛났던 개울가 가게는 물난리에 사라지고 없다. "벌써 4개째 입니다" 동행한 기자도 무너져 내린 다리를 셈했나 보다. 비가 내리는데 60대 농부가 물난리를 용케 피한 황소와 송아지 부자를 앞세우고 반만 남은 포장도로를 터벅터벅 걸어 내려온다. 내현리으로 가던 2차선 도로도 반쪽만 남아 절벽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다. 진흙탕 길에서 전화국 직원들이 고립마을 어성전으로 가는 전화선을 잇고 있다. 덤프트럭과 포클레인이 임시도로를 만드냐고 분주히 오간다. 손양과 어성전으로 가는 갈림길 옆 교회 앞마당에서 구호품이 비를 맞고 있다. 모처럼 성한 다리밑으로 반토막난 집 두채가 허옇게 곤두박질치는 개울물을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몇개 안 남은 전봇대의 전깃줄에 물난리때 떠 내려온 쓰레기들이 연처럼 걸려있다.
 '관계자外 出入禁止'
 이젠 더이상 못가는 고립마을의 초입이다. 차도 이젠 더이상 못간다고 진흙속에서 바퀴가 헛돈다. 가던 길을 되돌아 나오는 길 양양읍 월리의 자갈반, 진흙반인 논에서 비를 맞으며 노인들이 벼를 벤다."이거래두 거둬야쥬. 여긴 그래두 끝 물이 나가 우린 다행이래유." 다행이란다. 무엇이 다행인지 고희에 접어든 盧在泰씨(69·양양읍 군행리)는 "산사람은 살아야지 어쩌겠냐"고 반문한다. 발이 빠지는 논두렁에 盧씨와 벼를 거두던 朴일영씨(61·서면 북평리) 부부의 점심 바구니가 보인다. 구호품 참치캔 옆에 마시다 남은 소주 한병이 누워있다. 남대천 건너 용천마을에 소독차가 들어간다. 소독연기 속으로 마을이 가물가물하다. 남대천 구교를 건너 양양읍으로 향하는 기자의 이마 위로 빗방울이 다시 후둑후둑 떨어진다. 빗방울이 눈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눈물인지, 빗물인지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흘러 내린다.
南宮昌星 cometsp@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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