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민 스님

홍천 백락사 주지

멈추면 보이는가. 나무들의 이름이, 작은 잎사귀들이.

손길이 멎으면 대지는 깨어나고 새 생명은 어김없이 일어선다.

살아 있다는 것이 먹고 마시고 대화할 때뿐만 아니고 침묵으로 시선을 고정한 순간에도 나는 행복하다.

유난히 잦은 비 소식, 처음 보는 물의 넘침이 두렵고 낮은 곳의 소식은 상처투성이이지만 고전의 내용은 철학적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제자를 돌에 각인하기 위하여 올 봄에 가까이 사시는 서예가 선생님에게서 글을 받았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아직도 글을 새기지 못했었다.

마을 다리 상판까지 넘실대던 물의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글을 주신 선생님의 집주변은 축대가 물길에 휩쓸리고 무너져 내려 이곳에 와서 처음 보는 비 소식이었다고 아직도 놀란 표정이시다. 그 물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연장을 꺼내고 바위에 글을 새길 준비를 하면서 내가 아는 이 글의 의미와 되새김의 의미는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래전 산사태를 겪었던 이곳의 흔적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도 결국 온갖 난리 위에 견뎌낸 감사한 자취는 아닌지 숙연해진다.

고이면 넘치고 부족하면 기다린다. 그리고 저 낮은 곳에서 회통하는 물은 가장 겸손한 자의 마음일까?

나는 어느 곳을 향하여 흘러가고 있는지 반문한다. “상선약수-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아래로 아래로 흘러 큰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모두 만나 하나의 바다가 된다. 이 세상의 모든 흔적들은 모두 바다에서 만나 회통한다. 긴 여름 소나기도, 지루한 장마도, 그 즐거웠던 축배의 땀방울도 궁극에는 저 바다에서 섞이리라.

여름축제를 준비하면서 축제의 목적이 무언지 생각해 본다. 소통, 나눔, 즐거움이 하나가 되는 과정? 지난한 삶의 족적을 유추할 수 있는 환경, 아름다움은 바라볼 수 있는 것의 모든 대상, 많은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지혜…. 이런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궁극적으로는 <상선약수>가 아닐까?

비우고 또 비워서 너와 나라는 구분이 사라지고 하나가 될 때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즐거움.

나의 노동이 당신의 노동이 되고 나의 즐거움이 당신의 즐거움이 되고 당신의 축복이 나의 축복이 되고 당신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된다.

한방울의 물이 모여 바다가 되듯 8회를 맞은 환경설치미술전의 작은 역사가 지금 어느 강가에 머물고 있는지 모르나 큰 바다에서 하나가 되는 날까지 흘러 갈 것이다.

인생의 족적도 그러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