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주 스님

원주 국형사 주지

사과?

뉴튼의 사과가 아니다. 아니 그럴 수도 있다. 지금 내 앞 차탁 앞에는 사과 한알이 충혈된 눈으로 왕방울처럼 앉아 있음이다.

부끄럽지만 이 사회에서 나는 종교인으로 분류되고 있는 신분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종교 가운데 그 하나인 불교 출가자인데….

지금까지 출가자로 살면서 많은 신도님들과 내(탐)방객들을 만나보았다. 그 수많은 내방객들과의 차담에서 단연 으뜸으로 나눈 주제는 바로 ‘종교’이다. 불자님들을 포함한 여타 종교를 갖고 있다고 짐작되어지는 상담자들에게 “종교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고, 어찌어찌 답한다손 치더도 사전적인 답변만 돌아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중 사회적인 학력을 갖춘 분이라해도 특정 종교로 관념화되고 심하면 종교적 도그마(dogma)에 갇혀버린 대답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그외 어떤 종교에 예속되어 있는 분들이면, 그래서 그분들의 종교 신행 형태를 유심히 살펴보면 여전히 샤머니즘적인 종교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나 거개가 종교적 독선에 갇혀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즉 인터넷 용어로 ‘개념탑재’의 부재이면서 동시에 맹목적이기까지한 현실을 많이 보았음이다.

그럼 종교를 어떻게 생각해야하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종교는 사전적 종교론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자 여기 테이블위에 한 물건이 있다. 이 물건은 한국말로 ‘사과’이다. 미국말로는 ‘apple 애플’이며 중국말로는 ‘핑궈’이고 프랑스에서는 ‘pomme 뻠’이다.

위에서 열거했듯이 사과·애플·핑궈·뻠이라 다르게 부른다해서 ‘사과의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종교라함은 마치 그와 같아서, 모든 종교는 진리를 담고 있는 경전이 존재하는데, 이 진리를 담은 가르침에 지역적이고 역사적 경험이 다른 진리의 입장에서 보면 가시적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는게 현존하는 종교들의 일관된 모습들이다. 그 울타리를 걷어내고 보면 사실 지구상에 현존하는 종교는 ‘종교’라 할 것이 없다고 본다.

본고의 초입에 “뉴튼의 사과가 아니다. 아니 그럴 수도 있다”라고 말한 까닭은, 뉴튼이 나무 아래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책 속에 있는 알 수 없는 구절이었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더라도 있는 것이니 볼 수 없다고 그 존재를 부정하지 말지어다. 지혜 있는 자라면 그 근원을 파헤쳐 본질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과 한알이 나무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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