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 유망주 타지역 유출을 보며

▲ 이 호

레포츠부장 겸 뉴미디어부장

브래드 피트 주연의 ‘머니볼’이라는 영화가 있다. 메이저리그 만년 하위 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이 팀을 강팀으로 변화시킨 2002년 시즌의 실화를 바탕으로, 2003년 출판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2011년 국내 개봉에 앞서 읽은 책을 최근 다시 폈다. 실화인데다 야구를 소재로 한 경영혁신 이야기여서 여전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당시 메이저리그 선수단에 통용됐던 ‘경험’위주의 운영에 ‘통계’라는 과학을 들이밀며 최소 투자로 최대 수익을 올리는 경영의 귀재 이야기는 여운이 꽤 오래갔다. 빌리 빈 단장이 이런저런 흠집으로 저평가되거나 고정관념의 희생양이 된 ‘숨은 보석’들을 합리적 가격에 영입, 주력선수로 키우고 팀을 강하게 만드는 과정은 실화일까 싶을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빌리 빈 단장의 ‘머니볼’을 쉽게 풀면 경영 효율화로 해석된다. ‘스몰 마켓’으로 한계성을 띠고 있는 오클랜드에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누리기 위한 생존 전략인 셈이다. 오클랜드는 메이저리그 30개 팀 가운데 팀 연봉 최하위권이지만, 최근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디비전시리즈에서 맞서 싸웠거나 팽팽한 접전을 이어가는 명문 팀으로 변모했다.

오클랜드의 성공 이후 저예산팀이 숨겨진 선수를 발굴해내는 효율적인 투자를 ‘머니볼’이라고 일컫게 됐다.

머니볼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지난 10월 제 94회 전국체전에서 드러난 강원체육의 현주소를 보면서 2002년 당시의 오클랜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수선수를 수용할 실업팀과 예산이 절대부족한 현실에서 강원체육이 도민들의 기대에 부흥할 수 있는 길은 뭘까?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적은 자금을 보유한 최약팀을 강팀으로 바꿔놓은 빈 단장의 경영전략이 현재의 강원체육에 필요한 것은 아닐까.

최근 열린 강원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는 강원체육을 허약체질로 만드는 우수선수의 역외유출 문제가 쟁점이 됐다. 은퇴한 장미란 선수는 논외로 해도 사재혁, 진종오 등 세계적인 기량의 이 선수들은 강원도가 발굴하고 키웠지만, 전국체전에서는 타 시도 선수로 강원도와 경쟁하는 맞은편에 서 있었다. 세계양궁선수권대회 깜짝 우승의 주역 이승윤(강원체고3년) 선수도 코오롱에 입단 예정이어서 앞으로 경기도 유니폼을 입는다.

강원체육인들로서는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하지만 누가 선수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프로스포츠에서 선수의 성적은 연봉으로 직결되고 성적이 좋으면 그만큼 몸값은 올라간다. 이런 선수들을 보유하려는 경쟁은 넘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강원도가 타 시도와의 ‘머니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길도 없다.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대기업 실업팀의 연고지인 서울, 경기 등 타 시도와의 스카우트 경쟁은 ‘당랑거철’(螳螂拒轍)이다.결국 강원체육이 선택할 수 있는 생존방법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내는 경영합리화 전략일 수밖에 없다.

그 가능성도 봤다.

세계양궁선수권대회를 석권한 이승윤은 체육인재 조기 발굴의 좋은 선례다. 초등학교때 지도자들의 눈에 띄며 특별관리(?)를 받은 이승윤은 강원체고 재학당시 이미 초고교급 선수로 성장했다. 올해 전국소년체전에서 3관왕에 오른 김나영(철암중 1년)도 마찬가지. 역도는 중등부부터 대회가 있지만 강원역도는 우수선수 조기 발굴을 위해 도소년체전에 초등부 경기를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발굴된 김나영은 용상 100㎏을 들며 한국중학생 신기록을 작성했다. 또 전국체전에서 5000m 우승에 이어, 1만m에서 대회신기록을 세우며 2관왕을 한 김도연도 좋은 예다. 지난해 서울체고 졸업후 그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최선근 감독에 의해 강원도청에 입단한 김도연은 이후 한국 여자마라톤 기대주로 급성장했다.

2015년에는 안방(강릉)에서 전국체전이 열린다. 이번 체전에서 등위하락이라는 쓴 보약을 먹은 강원체육의 현장 곳곳에 머니볼의 실제 주인공 빌리 빈 단장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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