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_caption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2000년 6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을 통해 북한에 4천억원을 지원했다는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금융계를 출입하는 기자가 최근들어 은행권의 지점장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그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고 말한다. "최고의 인재가 몰려 있다는 현대상선 같은 대기업에서 한, 두푼도 아니고 무려 4천억원에 이르는 돈을 상반기 영업 보고서에서 실수로 누락시킨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는 금융권에서 밥을 먹고있는 사람이면 삼척동자도 다안다"고 말한다. 10월들어 국정감사장에서 터져 나왔던 야권의 4천억원 대북비밀지원 의혹이 지방의 금융가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지점장은 "정치권이 도대체 국민들을 뭘로 아는 지 한심하다"고 잘라 말한다. 
 4천억원.
 서민에게 1억원은 '꿈의 돈'이다. 월 200만원을 받는 월급생활자가 매달 한푼도 쓰지 않고 1년을 모으면 약 2천400만원이 적립된다. 그러니 1억원을 모으려면 우리 사회의 중산층이라 할 수 있는 이 월급생활자는 4년하고도 약 2개월을 모아야 1억원을 만질 수 있다. 그리고 4억원을 모으려면 대충 15년이상은 참고 기다려야 한다. 4천억원이라는 돈의 규모는 매달 200만원을 받는 샐러리맨 1천명이 약 15년동안 먹지도, 쉬지도, 잠도 안자고 모아야 하는 천문학적인 돈이다. 사실 이렇게 쉽게풀어 설명해도 실체가 잡히지 않는 돈이, 정부가 2년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에 전달했다고 의혹을 받는 4천억원의 규모다. 여권의 일부 고위인사의 실명이 거론되고 있고 4천억원 지원설을 둘러싸고 내부고발자의 증언도 터져나오고 있지만 '진실로서의 사실'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어쩌면 이같은 어마어마한 돈도 우리 민족의 숙원이자, 과제인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고 통일의 다리를 놓는 한줌의 모래와 하나의 볼트와 너트로 쓰여 진다면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허리를 한번 더 동여 매고 한푼이라도 더 북한에 흔쾌히 건넬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돈이 국민적 논의나 동의를 거치지 않고 전달됐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돈이 정녕 우리 7천만 민족의 화해와 분단의 아픔을 씻는 명약으로 쓰여지고 있느냐는데 우리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들은 이같은 의혹제기를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야권이 주도하는 대선전략의 하나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는 反통일적, 反민족적 보수주의자와 파시스트들의 준동이라고 성토한다. 물론 일부는 사실일 수도 있다. 허나 4천억원이 국민의 세금이라는 점과 4천억원의 사용처에 대한 확인과 검증도 통일을 위한 하나의 절차요, 필수 불가결한 작업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현재의 '4천억원 대북지원'이라는 의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모적인 논쟁은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하루아침에 진실 접근이 가능하다는게 금융권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누구는 서독도 통일전 동독에게 통일의 종잣돈을 건넸다며 의혹제기 자체를 평가절하한다. 그러나 진실은 서독의 동독에 대한 자금지원은 국민적 합의와 공감을 전제로 돈의 용도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확인을 거친뒤 이뤄졌다. 기자는 통독 12주년을 맞은 현재까지 독일통일에 뒷거래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물론 의혹조차 들어 본 일이 없다. 우리는 이번 4천억원 대북 비밀지원설이 여권의 주장처럼 "허구한 날 집권에 눈이 멀어 민족문제마저 정쟁에 끌어 들이는 야권의 음모적 의혹"으로 끝나길 두 손 모아 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명확한 사실규명을 위해서도 정부차원의 결단이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옷로비에 이어 대통령 자제들의 각종 뇌물수수, 그리고 가신들의 국정농단 의혹이 사실로 잇따라 드러났던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으로 '솥뚜껑(의혹)'이 야권의 일회성 폭로전으로 끝나길 빌어본다. cometsp@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