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학 도무

화천 원불교

물은 모든 생명체가 잠시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필요불가결의 요소이다. 동시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도와 은혜와 진리의 교훈도 무궁하다.

그 일면을 구구의 일모 격으로 이 백지 한 장에 요약해 본다. 물은 세상 만물을 살려주고 기르면서 스스로 낮은 곳을 향해 겸허하게 흘러간다. 구슬처럼 방울 질 때 돌도 뚫는다. 끊임없이 정성을 다해 맑고 흐림을 두루 합해 여울지며 강을 만든다. 바다를 이룰 때 수많은 어족을 포용하고 기르며 태산 같은 항공모함과 잠수함을 띄우고 삼킨다. 때로는 허공의 구름이 돼 폭풍과 힘을 합치면 뇌성벽력에 호통도 대단하다.

여기서 인간은 겸손과 용기와 지성을 배워야 한다.

모난 그릇에 담으면 모나고 붉은 색을 타면 붉다.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 향을 타면 향수라 하고 잔잔한 수면 위에 새가 날면 새가 비치고 웃는 얼굴로 대하면 그대로 웃는 낯이 비친다.

그러나 그 빛이 지나가면 물속에 머물지 않는다. 험한 계곡에서는 폭포도 되고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서 가고 막으면 고였다가 넘쳐 흐른다. 돌로 물을 치면 흩어졌다 다시 모인다.

잉크 속에 페인트 속에 들어가 글과 그림을 옮겨 주고 자기는 아무 공덕 자랑이나 불만도 애착도 없이 밑으로 스며들고 허공으로 증발돼 본래 물로 합한다. 물이 50% 이상이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물이라 해야 하지만 자기 이름을 감추고 산천초목과 금수, 곤충에 들어가서 그 개체의 개성대로 그 이름 대로 정성껏 섬기다가 인연이 다 되면 아무 긍지도 보람도 없이, 흔적도 없이 낮은 곳을 향해 무심히 떠나간다.

여기서 인간은 지혜와 무아봉공과 협력과 대자대비를 배워야 한다. 추우면 얼음도 되고 더우면 안개도 이슬도 돼 온갖 초목과 곤충들에 생명수가 되고 크게는 천지 대기와 합쳤고 작게는 세포 속에 잠겨서 천변만화 조화를 이룬다. 유상(有常)으로 보면 시공을 넘어서 여여(如如)한데 무상(無常)으로 보면 나날이 새로운 사물에 적응한다. 특히 인간 육신의 피와 살이 돼 땀과 눈물 등 무궁한 변화를 보인다.

물은 원래 색도 맛도 냄새도 없이 부드러운 성질이기에 모든 것을 포용하고 목 마른 동식물의 생명수도 되고 익사하는 동물에게는 해(害)도 되나 물의 뜻이 아니고 상대방의 뜻과 작용에 순응할 뿐이다.

시멘트를 굳혀 큰 건물을 이루고 수력발전도 해주고 온 산하대지를 목욕시켜주고 고귀한 밥상에도 오르고 천한 사람의 발도 닦아 준다.

여기서 종파와 이념과 종족과 국경을 초월해 하나의 생명으로 융합해 주는 공덕과 진리를 물에서 배워야 한다.

물 한 가지 속에 무궁한 진리가 있다. 왜 인간들은 종이로 된 책만 책이라 하는가. 상선여수라 했다. 겸손한 물의 덕은 우리의 정신, 꾸준한 물의 정성도 우리의 정신이다.

합치는 물의 덕은 우리에게 단결을 가르치고, 경계 없는 물의 덕은 우리에게 남북통일 정신을 일깨운다. 이런 물의 은덕과 무아봉공의 정신을 배운다면 세계평화는 물 흐르듯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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