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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은 높고 부귀한 사람들의 땅이라’

남궁창성 2014년 02월 03일 월요일
   
▲ 남궁창성

서울본부 취재팀장

한양은 높고 부귀한 사람들이 사는 땅이라/사시사철 좋은 절기가 많지만/시골은 가난한 천민만 사니/추석밖에 좋은 날이 없네//가을날이라 햇빛이 밝게 빛나고/밤이 되자 밝은 달이 떠서/이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지만/서민들 위해 있는 것은 아니네//부질없이 사방의 들판 가운데/아름다운 곡식이 영글어 고개를 숙이고/어느 집에는 벌써 타작을 하네//콩과 팥도 거두어 들이며/앞뜰에선 해바라기 씨를 벗기고/뒤뜰에선 밤 송이를 까고 있네//둥글고 둥근 질화로 부채로 바람 일어 마른 등걸 불 피우고/밥 짓고 국 끓여/대가족 먹고 마시기 한바탕//배부르고 편하니 기분도 살아나/저마다 한마디씩 왁자지껄 하네//지난해는 대흉년/죽음에서 살아나기 어려웠네//올해는 대풍년/하늘의 뜻이 죽이지는 않는구나//배가 북처럼 컸으면 한이 없겠네/입이 둘로 갈라져 있었으면 한이 없겠네//한끼에 열흘 치를 먹더라도/주린 배를 실컷 채워보자//상좌에 앉아 있던 어르신네/그만 떠들라 하시고는/사는 것이 어렵고 괴로워도/세상 만물이 차고 넘치지 않는다/오늘 취하고 배부르다고/굶주리던 옛날을 잊어서는 안 된다//나 같은 늙은이의 경험에 의하면/너무 먹다가는 병난다고 하시네.

이 글은 조선말기 학자관료였던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이 지은 ‘전가추석(田家秋夕)’의 전반부다. 그는 할아버지로부터 가학인 양명학을 배우고 1866년(고종 3년) 불과 15세에 과거에 급제했다. 나이가 너무 어렸던 그는 4년을 기다려 19세가 되자 홍문관에서 벼슬을 시작할 수 있었다. 1874년 서장관으로 청(淸)나라에 가서는 청의 대학자들과 교류하며 문장을 현지에 알리기도 했다. 이듬해 이건창은 암행어사로 충청우도에 나갔다 관찰사 조병식(趙秉式, 1823~1907)의 비행을 파헤쳐 파직에 이르게 했다. 하지만 조병식의 무고로 평안북도 벽동군으로 유배길에 올랐다. 조선 최고의 문장으로 평가받는 <전가추석>은 그렇게 유배지 벽동에서 태어났다. 후반부를 더 읽어보자.

남쪽 마을에서는 막걸리 거르고/뒷 마을에서는 황소 잡는데/홀로 서촌의 이웃집에서/밤새도록 애절하게 울고 있네//누가 저렇게 슬프게 우는가/유복자 안고 있는 과부/서방님이 살아 계실 때는/두 식구가 한 집에 살며/문 앞의 작은 땅에서/일년 농사 근근이 지어 마죽이라도 먹었지만/지난해 가을엔 서리가 빨리 내려/빗자루로 땅을 쓸어도 반톨 콩이 없었네//겨와 밀가루에 소나무 껍질을 섞어도/겨울을 나기에 오히려 부족했네//봄이 오자 부잣집에 가서/두 손에 움켜쥘 만큼 나락을 얻어/한 톨이라도 먹기 아까워서/고스란히 두었다가 종자로 썼네//기력은 날로 쇠해지고/위장은 날로 오그라 들고/이렇듯이 함께 굶었어도/계집은 나무처럼 질긴 몸둥이던가//나는 간다. 서방님 떠나시니/앞산 기슭에 가신 님 묻었다오/묻힌 서방님은 썩어 가는데/님이 뿌린 씨앗은 알곡 되어 익어 간다네//누구를 위하여 곡식은 익는가/문닫아 무덤은 볼 수 없구나//언제라도 가신 님을 따르려고 해도/ 엎드려 기어 다니는 아이는 어찌하리//아이 비록 아비 얼굴을 몰라도/오로지 서방님 골육이라네//아이를 안고 영령에 말하려 하자/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하는데/홀연히 들이닥쳐 문 두드리는 아전들/세곡받으러 왔네! 외치누나.

<전가추석>의 전반부는 시골에 풍성한 추석이 되어 가족들이 모두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즐겁게 이야기 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작년엔 흉년이 들었으나 올해는 풍년이 들어 모두 즐거워 하는 모습이 정겹다. 그러나 글은 중반부로 넘어가며 유복자를 둔 과부를 등장시켜 홀로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달픈 삶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에는 추리소설의 반전처럼 세곡을 독촉하는 관리를 등장시켜 조선후기 벽촌 서민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고려와 조선에 걸쳐 최고의 문장가로 손꼽히는 <여한구가문(麗韓九家文)> 가운데 한 명인 이건창의 글은 자연을 다룬 서정시나 임금에 대한 충성을 담은 조선의 일상적인 글쓰기에서 벗어 났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갑오년 설 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날 아침. 140여 년 전 조선 선비의 글을 떠올린 이유는 이번 설 귀향길에 <한양은 높고 부귀한 사람들이 사는 땅이라/사시사철 좋은 절기가 많지만/시골은 가난한 천민만 사니/추석밖에 좋은 날이 없네>라는 글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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