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종인

정치부장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마세요.”

국가의 의미와 역할을 되새기게 해준 ‘세월호의 비극’은 이같은 선내방송에서 시작됐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학생 가운데 200명이 넘는 학생들은 어른들의 충고를 듣고 선실에 머물러있다 피어보지도 못한 채 사그라졌다.

침몰하는 배에서 제일 먼저 도망친 이준석 선장과 승무원들, 사고 이후 허둥대기만하는 범정부대책본부 등 ‘민관 합작’의 허술한 재난대응이 ‘초대형 참사’를 합작했다.

지난 16일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TV의 긴급 뉴스를 볼때만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블록버스터급’ 사고가 발생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고가 나고 얼마되지 않아 단원고에서 ‘학생 전원 구조’라는 메시지가 학부모들에게 통보됐다는 뉴스를 볼때는 “그럼, 그렇지”라며 안도했다.

하지만 불과 몇시간 뒤 구조자와 실종자 숫자가 널뛰듯이 뒤바뀌더니 실종자 숫자가 300명을 육박하고, 곧바로 300명을 넘어섰다. 이후 수시로 바뀐 탑승자 수는 아직까지도 정확한지 확인되지 않고 있고 실종자수 역시 수시로 바뀌고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정부의 미숙하고 안일한 대응과 무능을 민낯으로 보게 된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기위해 ‘행정안전부’에서 명칭을 바꾼 ‘안전행정부’는 물론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 등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어느 국가기관 한곳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심지어 진주와 제주 해양교통관제센터조차 허술한 모니터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21년전인 1993년 292명의 사망자를 낸 ‘서해 훼리호 침몰사건’과 비교해도 재난대응 방식은 전혀 나아지거나 달라진 것이 없다. 안전을 강조한 박근혜 정부지만 주먹구구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열 흘 넘게 TV에서 나오는 사고 화면을 보는 도민과 국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한숨짓고 있다.

실종자 숫자가 사망자 숫자로 변해갈수록 육체적·정신적 한계상황에 놓였던 실종자 가족들은 무너지고 있었고, 이를 지켜보는 도민과 국민들은 ‘심리적 재난상황’에 빠진 것이다.

이같은 간접 경험 트라우마에 따른 스트레스 장애를 전문가들은 ‘대리 외상 증후군(Vicarious Trauma)’이라 진단한다.

대리외상증후군은 사고를 직접 겪지 않아도 방송을 통해 사고 장면을 목격하고, 슬픔에 빠진 피해자 가족을 지켜보면서 자신과 연관된 듯한 심리적 외상을 겪는 질병으로 정부나 자치단체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국가 규모의 심리적 재난이 발생했을때 가장 기본적인 안전망까지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국민이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불신하게 되면 국가의 신뢰기반이 허물어지게 되고, 이는 대한민국의 좌초로 이어지게 된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27일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정부의 미흡한 초동대응과 수습과정에서 생긴 문제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지만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대형 사고가 날때마다 정확한 사고원인을 분석해 재난청 신설 등 재난대응 시스템을 일제 정비해야 한다고 앵무새처럼 말하지만 항상 그때뿐이었다.

이같은 정부에 대한 불신을 해소시키지 않는 한 국민들의 ‘대리 외상 증후군(Vicarious Trauma)’은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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